[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과연 우리가 가진 관계에 대한 ‘감각’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관계를 대하는 태도, 관점, 낯선 상대에 대한 느낌이 한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닐 테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에 대한 감각을 쌓아 올려 나간다. 좀 더 정확하게는 태어난 아이와 엄마와의 눈 맞춤이 아이의 관계 경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아이의 성장과 삼부 뇌 가설(triune brain theory)

잠깐 인간의 뇌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보자. 인간의 사회성은 뇌의 발달과 함께 한다. 신경과학자 폴 맥린(Paul Maclean)은 인간의 뇌는 기능적, 진화론적 관점에서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삼부 뇌 가설(triune brain theory)은 복잡한 뇌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구획된 부위의 뇌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상을 남겼다.

뇌의 첫 번째 부분은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 뇌간과 그 주변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파충류의 뇌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생체 기능을 조절한다. 이 부위는 뱃속에서 발달 중인 태아에게 일찌감치 완성되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호흡과 체온, 기본적인 생리 작용들을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아이는 출생 전부터 호흡과 생리 작용을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뇌다. 

두 번째 부분은 <원시 포유류의 뇌>라 불리는 부분이다. 원시 포유류의 뇌는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를 포함한다. 파충류에게는 없지만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게는 존재하는 이 부위는 기쁨, 슬픔,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감정 신호들을 다른 층위의 뇌로 전달한다. 원시 포유류의 뇌 또한 완벽하지는 않지만 출생부터 기본적인 기능을 할 정도로 형성되어 있다. 아이가 엄마의 태내에서 나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만나는 순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급격한 환경변화가 아이의 변연계를 자극한다. 따뜻하고 포근했던 양수에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가 아이의 피부와 폐부 깊은 곳에 스며든다. 이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자아내고, 아이는 세상을 향한 첫 감정표현을 한다. 바로 ‘울기’이다. 그리고 이내 엄마에게 안겨 따뜻함을 느끼며, 엄마와 눈을 맞추며 관계를 경험한다. 첫울음을 시작으로 아이의 뇌는 외부환경과 상호작용하고, 감정 반응과 표현은 더욱 다양해지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아이는 자라며 상대방의 감정 반응을 인식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한 편 모방하며, 자신 또한 이를 바탕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감정이 서로 오가고, 내면이 얽혀 들어가며 관계는 깊어진다. 관계의 시작과 성숙을 경험하며 아이의 관계에 대한 시각은 좀 더 명료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감정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양념 같은 존재이다.
 

사진_픽셀


세 번째 부분은 <신 포유류의 뇌>라 불리는, 대뇌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대뇌의 피질 부위와 전두엽을 아우르는 부위이다. 이 부위는 인간의 이성과 인지기능을 담당한다. 인간이 관계를 맺어가는 능력,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감각을 익혀가는 능력이 바로 이 세 번째 뇌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놀랍게도, 인간의 뇌는 출생 당시부터 모든 구성이 다 갖추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하는 신 포유류의 뇌는 출생과 동시에 서서히 발달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환경들과 상호작용하며 뇌세포들 간의 신호전달이 활발해지고, 견고해진다. 뇌의 가장 바깥 부위에 있는 전두엽과 대뇌 피질들을 만들어간다. 의미 있는 경험들이 아이의 뇌를 채운다. 아이가 우리와 눈 맞추며 찡긋 웃는 순간에도 아이의 뇌는 조금씩 더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과 관계를 대한 태도, 시각은 어린 시절 양육과 성장 환경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분법적인 인과론이라 할 수 있겠지만, 관계는 실제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눈 맞추기, 아이와 함께 부모도 자란다

이렇듯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의 뇌는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서서히 발달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환경 요소는, 다들 짐작하겠지만 ‘부모’일 것이다. 부모의 양육 방식과 태도는 성장기의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기는 관계에 있어 수동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는 존재인가? 물론, 어린 아기에게 의사표현이라곤 눈 맞추기와 우는 것 밖에 없다. 과연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이의 성장과 부모와의 상호작용에 관한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놀랍게도, 최근의 연구에서 아기와 부모 간의 관계가 일방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울음과 미소가 표현의 전부인 아기가, 어떻게 부모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일까? 과학자들은 이를 상호 주관성 / 상호 조절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는 눈 맞춤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암묵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부모의 반응을 유발하고, 부모는 스스로의 반응에 대한 피드백(feedback)을 받는다. 아이에게서 받은 자극이 조금씩 부모의 반응을 변화시킨다. 부모의 반응은 다시 아이를 향한다. 아이의 표현은 결국 상호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보낸 신호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을 보며 피드백을 받는다. 일방통행으로 여겨지던 아이-부모 간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바로 상호 주관성 / 상호 조절 이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부모 또한 아이와의 관계 안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모든 부모는 부모가 처음’이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가 울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황망함과 잦은 염려, 걱정의 시기가 지나고 육아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부모의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행동에 대한 아이의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반응이 부모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내맡길 수밖에 없는 아이의 본능적 의존에, 부모 마음속의 책임감이 자란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게 반영되고, 이로 인한 불안정한 모습은 다시 부모의 마음을 다잡게 한다. 아이는 부모를 투명하게 반영하기에, 부모는 아이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또한 아이와 함께 자라난다. 육아에 지쳐 아이와의 소통이 소홀했다면, 아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자. 그리고, 아이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 시간이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위한 또 하나의 골든타임(golden time)이 될지도 모른다. 

 

* 참고자료
몸, 뇌, 마음, 주디스 러스틴 저, 노경선, 최슬기 역, NUN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