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주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희 딸아이가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인데요, 얼마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 상담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상담을 했는데 아이가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고 대답도 안 하고 뭔가 물어보려고 하면 제발 나를 좀 가만히 두라는 행동을 취해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 선생님과 일전에 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아이가 우리 선생님이다 하면서 다가가서 인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담할 때 선생님이 이 행동이 자기는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너무 조용하고 선생님한테 말 한마디 안 하는 아이인데 학교 밖에서 만났을 때 먼저 아는 척을 해서요.

저희 딸아이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는 것은 태어난 직후에 제가 알아챘습니다. 산후 1개월인가 후에 아기와 엄마가 함께하는 산후체조교실에 나갔는데요, 코스는 매주 월요일 1시간 총 10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엄마 10명과 아기 10명이 코스에 참가했습니다. 첫 30분 동안 제 딸을 제외한 모든 아기들은 잘 놀다가 30분이 지나면 하나둘씩 칭얼거리는 아기들이 나왔는데요, 우리 딸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칭얼거리거나 우는 아기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 딸아이를 늘 무릎에 앉혀서 강의를 진행했었지요. 그때 저는 알았지요. 우리 딸이 낯선 곳이나 낯선 사람을 싫어하고 낯가리는 걸로는 상위 10%에 들겠구나 하는 것을요.

점점 커가니 이런 성향이 눈이 보이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눈에 띄게 도드라지더라고요.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 친한 친구를 찾기가 어렵고 학교 행사에서도 다른 아이들은 함께 뛰어노는데 딸아이만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만 봅니다. 생일파티에도 거의 초대를 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친구를 가지고 싶어 하는데요, 제가 여러 엄마들과 연락을 취해 친구를 집에 초대하면 그 만남은 1회성에 그치고 그 친구는 제 딸을 초대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가 친구들을 많이 집에 초대하고 파티도 해봤지만 친구가 좀처럼 생기질 않아서 제가 헛수고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또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부끄러워서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지 못합니다. 열 살이 되었으면 가게에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물건값을 치를 줄 알아야 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하고, 학교에서 자기에게 욕하는 아이에게는 되받아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밖에만 나가면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엄마인 제가 보기에 아이가 수줍음이 많긴 하지만 천성은 명랑하고 창의성이 넘치고, 좋아하는 것에는 집중력을 발휘해 원하는 바를 잘 성취하는 머리가 좋은 아이입니다. 공부를 안 하는 것에 비해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고요.

초등학교에 나가고부터는 사실 제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생활은 잘하는 편입니다. 조용하긴 하지만 동급생과 트러블도 없고 성적도 나쁘지 않고요. 클수록 조금씩 나아지긴 해서 지켜볼까 생각하다가도 혹시 치료를 해야 하는 증상이고 치료시기를 놓치면 더 사회생활이 힘들어지지나 않을까 싶어서 걱정이 됩니다.
 

사진_픽셀

 

답변)

낯을 많이 가리는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를 둔 어머니로서 많이 염려가 되실 거라 생각됩니다. 따님의 현상을 진단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진단을 말씀드리자면, 선택적 함구증입니다. 매우 어려서부터 낯가림이 심하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눈에 띄게 나타났고요. 아마도 유치원에서도 비슷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보통의 선택적 함구증은 가정에서 한정된 가족 구성원들과는 대화에 지장이 없고, 밖에 나갔을 때 익숙한 가족 구성원들과만 이야기를 잘 나누고,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데, 따님은 시장에서 선생님께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기질적으로 낯을 가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이 심하다는 것을 알아채신 어머니는 정말 민감하게 아이에 대해서 관찰하고 발견하시는 눈을 가지고 계시고, 이로 인해 아마도 아이 어려서부터 크게 불편하지 않도록 잘 도와주시기도 하셔서, 아이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에 대해서 관심도 많으시고 관찰도 많이 하시고 말씀해 주신 것 같네요. 

선생님께서도 어머니와 비슷하게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시고 말씀을 하시기도 하시고, 마트에서 계산을 혼자 하지 못하고,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하면서도 말을 잘하지 못하는 정도의 어려움이 있다면, 아이도 이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께서 아이와 이에 대해서 차분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의 마음을 알고 어려움을 함께 다뤄가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나눠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알기 어려운 어려움들이 여러 평가를 통해서 발견이 되는 경우도 있고(선택적 함구증의 경우 표현 언어의 어려움을 가진 경우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타인이나 환경에 대한 과도한 왜곡된 지각, 대인관계(가족을 포함한)와 관련된 과거 경험에 대한 감정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기질적으로 낯가림이 심하고 불안이 높으면 더 오랜 기간 친구 만들기에 어려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적절히 도움을 받는다면, 또래 관계와 학교 생활 등에서 ‘어렵다, 불안하다, 위험하다’고 기억하는 경험이 줄어들고, 앞으로의 사회적 관계에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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