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인류가 진 것이 아니다, 이세돌이 진 것이다’라며 이세돌 9단은 겸손을 표했지만, 얼마 전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빅매치는 사실상 인류와 인공지능의 정면대결이란 타이틀로 세간을 뒤흔들었다. 연일 각종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하던 그 열기도 어느새 잠잠해졌지만, 구글과 이세돌 9단이 선보인 6박7일간의 대국은, 사람들의 뇌리에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의 진일보한 새로운 위상을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알파고가 일으켰던 인공지능에 대한 갑론을박의 화제에는 ‘머신러닝’ ‘딥러닝’과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끊임없이 화두가 되고 있다. 알파고가 인간의 지능에 도전할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열쇠가 ‘딥러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딥러닝이 근간으로 하고 있는 개념이자, 최근 컴퓨터 데이터 분석의 뜨거운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다. 기계학습 프로그램은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간의 패턴을 찾아내고 분류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기계학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가까운 예로 페이스북의 deep face 프로그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딥페이스는 사용자가 올리는 사진 포스팅과 태그 정보를 취합하여 사진에 찍힌 사람들을 페이스북이 스스로 누군지 찾아내주는 프로그램으로, 아마 페이스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광고 배너들은 각각의 사용자가 이전에 검색한 컨텐츠 내용 분석을 통해 맞춤형 광고로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기계학습이 최근 각종 서비스나 문화 사업 뿐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더욱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영역은 다름 아닌 각종 학술 분야이다. 이미 여러 학술계가 기계학습을 통한 연구 방향과 방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컴퓨터는 단순히 입력된 자료와 그에 대한 분석 명령에 따른 ‘계산’만을 해서 연구자가 스스로 세운 가설을 입증하고 확인하는데 방법적인 도움을 주어왔다. 그러나 머신러닝을 통해서는 컴퓨터가 직접 데이터 덩어리 속에서 규칙과 가설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파스퇴르가 우연히 푸른곰팡이 균에서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발명해낸 것처럼,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가설의 설립에는 많은 경험을 요하는 어떤 직관적인 발견이 필요하다. ‘푸른 곰팡이에 항생제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 자체는, 그 증명에 대한 방법론적인 대책만 있으면 되겠지만,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 푸른 곰팡이에 있을 것이다’라는 태초의 가설은 인간의 ‘직관’만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계를 뜨겁게 달구는 ‘기계학습’의 놀라운 점은, 연구자의 번뜩이는 직관 없이도 프로그램이 스스로 빅데이터에서 연구 대상을 창출해낸다는 데에 있다.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직접 키우고(data farming), 분석(data mining)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지식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기계학습을 통한 연구는 의학분야, 특히 정신의학의 분야에서 또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Nature지에 실린 한 연구(Ray S 등)에서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신호전달 단백질 (signaling protein) 120개를 기계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와 일반인을 구분할 수 있도록 연구자가 관리 감독해주는 training sample에서 컴퓨터는 120개의 단백질 중 직접 찾아낸 18개의 단백질이 알츠하이머의 표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리고 컴퓨터가 찾아낸 18개의 단백질로 test sample을 대상으로 질병 유무 구분을 시험 했을 때, 단백질 표지자들은 진단에 있어 무려 90%의 민감도와 88%의 특이도를 보였다.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 간의 유사성과 패턴을 분석하여 새로운 진단 지표를 발견해낸 것이다.

또 다른 연구들에서는 자살시도자들의 중추신경계 DNA 염기서열을 대상으로 한 기계학습을 통해 자살시도와 유의한 연관성을 갖는 SNP(단일염기 다형성)들을 찾아내기도 하였으며, 기계학습을 활용하여 뇌 MRI 영상을 분석하기도 하였다. 조현병 환자들과 일반인의 뇌 MRI를 분석한 기계학습은 MRI 영상을 통해 조현병 환자를 진단하는 데에 86%의 정확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증상과 병력만을 가지고 진단하던 과거의 정신과적 질환들에 대한 접근 방법에 기계학습이 새로운 과학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 속에서 새로운 상관관계나 패턴을 찾아내는 연구를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 한다면, 기계학습과 인터넷 정보 데이터 망을 통한 빅데이터의 활용이 수월해지며 대두된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은 데이터 파밍(Data farming)이다. 농산물을 수확하듯 데이터를 길러내고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데이터 파밍은 웹사이트에 환자나 일반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 정보를 올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유동적 데이터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는 형태로 그 예를 들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전통적인 연구처럼 실험군이나 대조군을 모집하여 그들의 특정 정보를 얻는 형식과는 다소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데이터 파밍에서는 웹사이트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건강정보를 과거에서부터 통시적으로 분석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참여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에 대해 알 수 있다. 웹사이트에 축적되는 데이터들은 불안장애, 조울증, 조현병, 우울증과 같이 참가자들이 입력한 병력사항을 바탕으로 기계학습을 통해 스스로 추출, 분류, 분석되어 유의한 결과로서 제공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거나, 평가할 수도 있고, 연구자들은 이 같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학적 사실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데이터 파밍 시스템인 PatientLikeMe.com 에서는 현재 약 10만 명 이상의 참여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기계학습을 통한 데이터 처리와 분석은 WHO 같은 기관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고 있던 기법이고, 세계 정신의학계에서도 주류 연구 방법론을 차지해가고 있는 큰 흐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술에 대한 접근성의 어려움이나 생소함은 여전히 기존의 정신의학자들에게 기계학습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었을 때, 컴퓨터가 바둑으로 인간을 넘어설 순 없을 거라던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그 위용에 아연했다.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에 이미 깊숙히 들어와 있던 인공지능이었지만, 막상 그 위력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자 영화 속 디스토피아의 그것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컴퓨터가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하고 심지어 바둑도 두는, 그것도 인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잘 해내는 모습에 위압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거기에 더해 데이터 마이닝과 데이너 파밍이 보여주듯, 인류 지능의 집합체라는 상아탑마저 인공지능의 잠식에서 예외가 되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증기기관이 그랬고 컴퓨터가 그랬듯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불안감을 안겨 주어 왔던 역사는 반복되어 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너무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어 다른 영역의 의학과는 달리 순수하게 과학적이거나 생리학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아 왔다. 또한 질병의 분류와 진단에 있어서도 불분명한 증상에 의존할 경우가 많았다.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이라는 든든한 무기를 들고 방대한 데이터의 움직임을 좇는 정신의학의 새로운 물결의 끝에, 인간 정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기다리고 있길 기대해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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