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사이, 정치인들은 왜 다 저래?

...국민과 경제를 먼저 생각합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후보 O 번 김OO을 찍어주십시오! 
기존 정치인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우리는 선거철이 되면 온갖 클리셰의 홍수에 휩싸인다. 같은 장면, 같은 상황에서 또 속아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이번만은 아니겠지, 이번에는 좀 다른 사람이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들은 언제나 반듯하고 인자한 인상에 기존의 낡은 정치를 무너트리고, 이 사회에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가져다줄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그 기대가 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그들이 주장은 당선과 동시에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버린다. 그렇게 공약은 헛된 약속이 되어버린다. 믿었던 이의 위장 전입, 금품 수수, 청탁 등 각종 비리가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고, 정치인은 뻔뻔한(?) 얼굴로 결백함을 주장하다 얼마 못 가 그 죄가 사실로 드러난다. 국민들은 또 상처받을 뿐이다. 

공약(公約)은 만인을 향한 약속이다. 한 사람이 타인에게 하는 약속은 신뢰와 실현 가능성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공약의 진정한 의미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부분은 자신이 내세웠던 주장들이 이행되지 않는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우리에게 근거 없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또, 그 거짓말의 의미는 친구 사이에서 주고받는 가벼운 거짓말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크지 않은가. 

정치인은 국민들을 대표해 나랏일을 수행하는 자리다. 우리는 그들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가기를 기대한다. 안타깝게도, 순진한 얼굴로 '국민의 이익' 운운하던 때는 오래가지 않고 갑질 횡포, 인사 청탁, 뇌물 등 자신의 탐욕을 충족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들로 급속한 태세 변환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된다.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할 이들이 당장 자신의 이득을 먼저 챙기고, 자신들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아 정작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는 행태를 보면 '반사회성 성격'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르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뉴스에서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싶은 것이 기분 탓만은 아닐 테다.
 

사진_픽사베이


반사회성 성격(antisocial personality)이란 무엇인가?

반사회성 성격 장애(=반사회성 인격 장애,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는 성격 장애의 한 유형이다. 성격 장애는 일시적인 증상이 판단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패턴을 염두에 두어 진단한다. 다른 정신질환들과 달리, 성격 장애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어쩌면 평생에 걸쳐 특징적인 기분, 생각, 행동의 패턴이 유지되어야 한다. 반사회성 성격 장애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법이나 사회적 규범에 맞추지 못하고, 이를 어기는 행복을 반복함
2) 개인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 타인을 속임
3) 빈번한 불안정성, 공격성
4)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시하는 무모성
5) 자신의 책임이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지속적인 무책임성
6) 타인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에 대한 무관심, 합리화

위와 같은 패턴 양상이 성인기 이후 인생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면,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진단 내릴 수 있다. 반사회성 성격을 가진 이는 이름 그대로 '반사회적'이다. 사회가 가진 법과 규범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좇고, 그 과정에서 타인이 입은 상처와 손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밥 먹듯 하는 거짓말과 그에 대해 빈약한 합리화로 일관하며, 일말의 가책이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좁은 의미에서 반사회성 성격 특성은 살인, 강도 등을 일삼는 범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어금니 아빠 사건을 비롯,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이거나 납득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을 하는 범죄자들은 반사회성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 중 50~75%가량이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범위를 좀 더 넓혀본다면 우리 주변에서도 반사회성 성격 특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약 2%가량이 반사회성 성격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진단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는 수준에서 반사회성 성격 특성 중 일부만을 가진 이들은 그 수가 더욱 많을지도 모른다.  

반사회성 성격 장애의 진단 기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언론의 정치란을 통해 쉽게 접한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 손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겼다.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이런 반사회성 성격 유형을 발견하게 되면서, 당장 우리의 삶이 염려되는 것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에서는 어떤 반사회성 성격 특성을 가질까? 

 

정치인들에서 보이는 반사회성 성격 특성

1. 뻔뻔한 거짓말

어떤 정치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공약들을 내세운다. 또,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할 (혹은 자신마저도) 합리화를 대거나, 반대파의 탓을 한다. 공약뿐만이 아니다. 다른 정당의 반대 의견에 대해 근거 없는 모함을 하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넘어가 버린다. 거짓말을 일삼고,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모함은 반사회성 성격에서 보이는 특성 중 하나다. 


2. 양심과 가책의 결여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다. 부정을 저질러 온 이는 어떻게든 꼬리가 밟혀 법의 심판대 위에 오른다. 하지만, 지금껏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이를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극구 부인하고 결정적 증거 또한 '남 탓'만 일관한다. 최대한 시간을 끌다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이후에는, 갑자기 병자가 되어버린다. 어느 날 갑자기 마스크를 쓰고 수액 줄을 치렁하게 늘어뜨린 채로 휠체어에 실려 나오는 정치인의 '쇼'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은, 못내 국민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3. 지속적인 무책임성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한 듯하다. 국가 운영과 국민에 대한 봉사가 목적인 공직에 있으면서도 이는 뒷전이다. 합리성에 기반한 논의가 필요한 국회는 토론 외적인 요소에 의해 쉽게 취소돼버린다. 최근 공개된 국회의원들의 특수 활동비는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는데, 한나절 진행되는 회의에 참석하는 데 대한 일회성 참가비가 웬만한 직장인의 몇 달 월급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또, 해외 출장 시에 지급되는 활동비는 웬만한 직장인의 1년 연봉 수준으로 밝혀졌다. 침체된 국가 경제 상황에 솔선수범해야 할 이들이 정작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의 몫만 챙기는 모습을, 일반적인 사회인의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4.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희생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자신의 성공과 야망을 위해 타인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같은 집단 내에서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야합과 배반을 일삼고,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반대 성향의 집단으로 금세 옮겨버려 '철새'라는 악의 어린 별명을 얻기도 한다. 또, 국민을 대표하는 리더로서 모범을 보이기보다 온갖 금품수수와 청탁, 비리를 위해 그 자리를 이용한다. 그들에게 '미안함'이나 '양심의 가책' 같은 단어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며, 결국 자신의 이익만 좇는 대가는 돌고 돌아 국민에게 향한다. 

 

신중한 '한 표'는 우리의 몫, 알아야 볼 수 있다

모든 정치인이 반사회성 성격 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 어떤 특성은 전형적인 정치인의 행동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어떤 이들의 행동은 나라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파괴적일 수 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그들을 선택할 수 있는 소중한 권리가 있다. 쉽진 않겠지만, 대상자들의 정치가로서의 삶의 궤적과 경력을 잘 살펴 진정 나라와 국민에 봉사할 수 있는 이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우리가 행사해야 할 권리이며, 필연적 의무다. 또, 충동적이면서도 불안정한 반사회성 성격 특성을 가진 이들을 배제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속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내세우는 겉모습의 이면에 있는 '그 무엇'을 보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참고자료

1. [건강칼럼]반사회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 대한변협신문(2012년 2월 2일)
2. '특수'한 일 없이 특수활동비 받은 국회의원들, Jtbc뉴스(2018년 7월 5일)
3. 신경정신의학 3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아이엠이즈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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