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송후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통칭 항불안제라고 하는 약물을 종류에 따라 진정제, 안정제, 수면제라는 말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항불안작용을 하는 약물이 결과적으로 진정, 이완 효과가 있고 나아가 수면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단기 복용 경험으로는 단 1회 복용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지만 비교적 신속하게 나타나는 편이라 불안 증상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선호할만하다 싶었습니다.

이들 항불안제는 일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에 속하는 약들입니다.

항우울제와 달리 벤조다이아제핀계열 항불안제를 복용할 때는 중독과 남용의 가능성에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향정신성의약품과 마약에 대한 논쟁이 그것입니다.

 

원래 ‘마약(痲藥)’이란 양귀비 유액을 건조시켜 만드는 아편을 지칭하던 말로서 의료용으로는 모르핀과 같은 진통제로서 이용되고 있지만, 아편을 저렴하게 정제한 헤로인은 환각 효과를 동반하고 강한 중독성을 갖기 때문에 불법 약물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리고 ‘향정신성의약품’이란 마약을 포함하여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정신 상태나 정신기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약효가 차츰 줄어들기 때문에 용량을 늘려야 하며, 의존-습관성이 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오남용 할 경우 인체에 위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정도에 따라 법적으로 1군에서 4군까지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이 분류 방식은 지금은 더 이상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는 것이지만 오랫동안 통용되어 왔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겠습니다.

 

1군에는 사용하게 될 경우 이익보다 위험성이 훨씬 높은 환각제 LSD 등 24종이 있으며, 2군에는 마약이라 부르는 모르핀, 헤로인 등 아편류와 대마초, 마리화나, 해쉬쉬 등 카나비노이드계 약물, 흔히 각성제라고 부르는 중추신경자극제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코카인, 그리고 ADHD 환자에게 치료제로 쓰이면서 일부 수험생들에게 ‘공부 잘하는 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메칠페니데이트가 속해 있습니다.

 

3군은 2군에 비해 오남용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어 의료용으로 많이 쓰이지만 중독성이 있는 약물로, 바비츄레이트계 진정제인 페노바비탈 등 60종의 약물이 여기에 속해 있고, 4군은 3군보다는 적지만 오남용의 위험과 중독성에 주의해야 할 약품들로 벤조다이아제핀계 항불안제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최근 우유주사라는 이름으로 세간에서 화제가 된 프로포폴도 이런 종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약물은 법적으로 모두 마약류로 지정돼 일반인의 수집, 거래가 금지되어 있으며 오남용 할 경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원래 향정신성의약품과 마약은 의미가 다르지만 법적으로는 모두 마약과 같이 취급됨으로써 병원에서 처방하는 진정수면제나 항불안제도 마치 마약인 것처럼 세간의 오해를 사게 된 것입니다.

가끔 연예인이 처방전 없이 수면제를 구했다가 적발되어 마약중독자인 것과 같이 보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수면제와 마약은 엄연히 다른 것으로서 구분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항불안제에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용이 금지된 필로폰이나 암페타민과 달리 항불안제는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약물을 대량으로 수집해 중독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되파는 상인도 존재합니다.

‘만병통치약’, ‘신경성 위장약’ 등의 이름을 달고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정체불명의 약들을 조사해보니 상당수가 항불안제에 속하는 약들이었다고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더 큰 문제는 항불안제가 병의원에서도 과도하게 처방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약사에 따르면 출시된 항불안제 중 60% 이상이 정신과 이외의 다른 과에서 처방되고 있다고 합니다.

고혈압, 만성위염, 위-십이지장궤양, 대장염, 골다공증, 통증, 갱년기장애와 같은 만성 질환에 항불안제를 함께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일부 정신과에서조차 만성 질환자에게는 항불안제 용량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병원에서 환자의 강력한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최근 정부에서는 수면제 등 일부 향정신성의약품의 처방 일수에 법적인 제한을 두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열외로 놓고 본다면 사실 벤조다이아제핀계 항불안제는 약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즉 무분별한 남용, 불법 유통 등과 같이 잘못 사용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 전문가에 의해 적절하게 컨트롤만 된다면 항불안제는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약입니다.

특히 우울증 초반에 항우울제가 작용을 나타낼 때까지 몇 주간 복용하는 것은 특별히 내성이나 의존성을 불러올 가능성이 적은 편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신체에 잔류 시간이 짧으면서도 남용의 여지가 줄어든 약제도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항불안제는 보건법상 마약류로 지정되어있긴 하나 마약과는 다르며 무작정 기피하거나 무조건 의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가 적절하게 처방을 주고 환자는 용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항불안제는 큰 걱정 없이도 충분히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 대한불안의학회
대한불안의학회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전문학회로, 공황장애, 강박장애, 사회불안장애, 범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다양한 불안 및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 교육 및 의학적 진료 모델 구축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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