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년 전 일본의 한 요양병원에서 입원 환자들이 석 달 동안 48명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8일, 병원 수간호사가 벌인 연쇄 살인사건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죠.

더 충격적인 사실은 범행 동기였습니다.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걸 지켜보기 싫었고, 자신이 근무할 때 환자가 숨지면 유족에게 경위를 설명하는 게 귀찮아서 살해했다.”

이런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기에 일본 특유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저항 불능의 환자를 의료진이 살해하는 일이 2016년 이탈리아에서도, 2018년 독일에서도 각각 발생했었습니다.

어떻게 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의료진이, 이런 충격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걸까요?

 

먼저, 의료진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고통받는 것뿐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의료진 직업 특성상, 다수의 환자들의 고통을 직접 봐야 하며, 또 자기 자신이 환자에게 고통을 주는 당사자가 됩니다.

환자의 고통을 온전히 다 느끼게 되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 속에 있는 방어기제가 작동을 합니다.

즉, 환자의 고통에 대해 의료진이 무덤덤해지는, 환자를 사물로 보게 되는 ‘객체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런 ‘객체화’가 적은 의료진이 다수의 환자를 담당해야 할 때는 유용하기도 합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많은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거나 처치를 하거나, 시술을 할 수 있게 도와주죠.

마치 발에 굳은살이 생겨서 끊임없이 걸어도 아프지 않게 변한 것처럼요.

 

하지만, 가끔은 이 ‘객체화’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환자가 아침에 일어난 뒤 해도 되는 채혈을, 의료진의 회진이나 인계시간에 맞춰 새벽에 하는 것이 가장 흔한 예죠.

발에 굳은살이 너무 두꺼워지면, 작은 개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밟고 지나가게 되니까요.

그리고 종종, 의료진의 정신 건강 자체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의 객체화는, 환자연쇄살인 같은 악몽을 현실 세계에 일어나게 합니다.

 

물론, 모든 의료진이 모두 객체화의 늪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진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죠.

하지만 개인의 노력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 의료진이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진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의료진에게 적절한 휴식과 안전 그리고 교육이 제공된다면, 환자들은 더 안전하고 따뜻한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투자만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원칙은, 의료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적어도 병원에서는 우리 모두가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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