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터넷 세상 속 퀴어 축제는 혐오 그 자체였다.

성적인 부분만 강조한 의상이나, 카메라를 향해 거칠게 욕을 하는 축제 참가자, 또는 축제가 지극히 비정상적이어서 견디기 힘들었다던 수많은 증언들.

 

사진_위키미디어공용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직접 퀴어 축제에 가보면 어떨까?

 

이 얘기를 들은 지인들은 즐거워했다. 정신과 의사는 그런데도 가야 하냐면서.

몇몇은 약간의 우려를 했다. 누군가 너에게 관심을 가지면 어쩌냐, 그리고 이성애자인 네가 그곳에 가도 되는 거냐?

물론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 뒤에는 의혹의 눈빛으로, 나의 성향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는 갔다 온 뒤 꼭 후기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들도 내심 인터넷과 다른 실제 상황이 궁금했던 것이다.

 

지하철이 시청역에 정차하고,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길게 늘어진 화장실 줄이 보였다. 축제가 느껴졌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화장실 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는 칙칙한 색깔의 옷을 입고,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의아함은 잠시뿐,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축제에 어울리는 무리들이 나타났고, 나는 화려한 색들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으로 올라와서야 상황이 이해됐다.

내가 있는 쪽 출구 건너편에, 거대한 확성기로 무장한 퀴어 축제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의 신이, 그들의 다양한 색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가져가 버린 듯한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신호가 바뀌고 서울광장으로 들어가는 무지개다리가 생겼다. 다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경계를 넘었다.

 

내가 보기엔 내 옷이 너무 평범한데, 여기에서는 내가 너무 눈에 띄게 입은 것 같았다.

혹시 이성애자냐고 검문을 하면 어쩌지 라고 고민을 했으나,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을 걸기 전,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 일상과 다를 게 없었다.

도대체 나는 왜 몰래 온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인터넷으로 자주 봤던, 기괴하거나, 엉덩이 특정부위에 구멍이 난 옷을 입고 있거나, 상의를 탈의한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정말 가끔, 성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으나, 주로 일상복 위에 겹쳐 입은 정도라, 민망하지 않았다.

 

다들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자유로워 보였다. 적어도 이 좁은 서울광장에서는 그들은 평소에 원했던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착용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의혹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내 시선이 편해짐을 느꼈다. 내가 쳐다보든 아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색이 있었지만, 눈이 부시지도 어지럽지도 않았다. 그저 시선으로부터의 자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내 모든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았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들이 모두 합성이 아니라면, 분명히 조금은 더 성적이어야 했다.

행사장을 뒤졌고, 내가 찾은 것은 무지갯빛 남성형 성기뿐이었다. 홍대나 강남에서도 한복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에 기운이 빠졌다.

저 멀리 ‘보건’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을 섰다. 생리 컵이었다. 내 차례가 왔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도망쳤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재기’라는 단어를 사용한 일부 집단의 이벤트나, 시청광장 외곽을 둘러쌓은 반대 집단을 향한 욕설. 너무 더운 날씨.

 

하지만 이런 것들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성소수자 축제라는 명칭에 걸맞은 것들이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홍보, 성인 성소수자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자리, 흥겨운 공연, 성소수자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과 대처 방안, 성소수자들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리.

 

그들의 고민과,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민, 그리고 그들과 관련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한 자리에 어우러졌다.

사실,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장벽을 넘어 행사장으로 들어왔고, 성소수자에 관한 모든 것들이 서울광장에 결국 모이게 됐다.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들의 절규가 이 축제를 좀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그들의 신은, 역시 신이었다. 서울 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의 천국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여 들어갔다.

 

조금은 자신감이 생겨, 몇몇 분들에게 정신과 의사임을 밝히고 대화를 시도했다.

다들 정신과 의사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해주셨다. 감사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성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신과의 도움이 필요한 성소수자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정신과 의사들의 태도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정신과에서 겪은 당혹스러운 상황 때문에, 방문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축제 현장을 조금 벗어나자, 무지개 빛들은 곧 사라졌다.

내 손에 든 현란한 팸플릿을 사람들이 쳐다봤다. 이전 같았다면 팸플릿을 가방에 넣었겠지만, 내가 직접 본 그들의 축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기에, 숨기고 싶지 않았다.

 

다시 돌이켜보니, 성소수자를 실제로 접하지 못했을 때의 고민은, 그들이 내 삶에 어떤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축제 속에서, 성소수자는 내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역시,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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