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로봇, 소리>의 주인공 해관(이성민 분)은 외동딸 유주가 대구에서 실종된 이후 10년간을 전국을 돌며 딸을 찾아 헤맨다. 주변에서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찾지 못할 것이라며 그를 말리고, 심지어 그의 아내마저도 그런 그의 집착을 만류한다. 하지만 영화 속 해관은 딸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딸을 찾아 낼 것이라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놓지 못한다. 10년 전 사라진 딸을 찾아내겠다는 그의 의지는 국정원과 미군의 추격에도 굴하지 않고 영화 내내 기적처럼 그를 이끈다.

 

영화 뿐 아니라 실제로도 딸의 실종 이후 13년간을 마피아와 정부와 싸워온 길고도 참담함 여인의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 실화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의 수산나 트리마르코(Susana Trimarco)이다. 2002년 당시 23살이었던 그녀의 딸 베론은 어느 날 길 병원에 가던 한복판에서 갑자기 납치된 뒤 실종 되었다. ‘3명의 괴한이 딸을 강제로 차에 밀어 넣었다’는 목격자들의 이야기와, 딸이 납치되어 성매매를 당하고 있다는 증언들에 트리마르코는 딸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스스로 성매매 여성이나 성매매 포주로 변장하며 전국의 집창촌을 모조리 뒤져가며 아르헨티나 전역을 찾아 헤맸고, 그런 그녀에게 사업이 드러나며 견제를 시작한 마피아나 부패경찰과 끊임없이 싸워나갔다. 마피에의 협박과 테러에 집이 불타고, 수차례의 암살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녀는 딸 베론 뿐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인신매매, 성매매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싸움을 이어나갔다. 결국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녀의 딸 베론은 여전히 신원이 파악되지 않고 있고, 그녀의 투쟁과 딸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아르헨티나 사회 전체에 큰 변혁을 일으켰고 세계 곳곳에도 크나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눈물겨운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감동적인 모성애와 부성애 밑에 감춰진 현실엔, 그들의 삶을 그토록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애끓는 슬픔이 넘실대고 있다. 자녀의 실종이라는 거대한 슬픔의 파편이 가슴 속에 꺼지지 않고 타올라 그들을 집착과 맹목으로 내몰아온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슬픔과 우울과 맹목적인 기대,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그 슬픔은 유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이처럼 실종 자녀 유가족의 애도과정은 단순히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이별이나 죽음에 대한 정상적인 애도반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애도과정(Mourning process, grief reaction)은 사랑하는 대상이 사망했을 때의 일련의 심리적 과정들로, 프로이드(Freud)는 이 애도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상실(loss)에 대한 심리적 반응으로서의 우울증에 대해 설명했다. 상실된 대상 또는 상실했다고 생각되는 대상에 대한 양가감정과 스스로의 리비도가 대상에게로 투사되는 과정으로서의 애도반응은, 그것으로부터의 점차적인 회복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 우울증을 발생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애도의 초기단계에 소아나 생존자는 상실된 대상 또는 망자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시기에는 상실에 대한 강한 부정과 분노를 보이며, 대상을 찾거나, 없으면 화를 내고 항의한다. 둘째 단계에는 절망감과 혼란이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상실에 대한 고통을 극심하게 느끼게 되곤 하며, 우울감이 악화된다. 무의미함과 무가치감이 팽배하고 자살사고에 매이게 되기도 한다. 사회생활의 상호관계가 어려워지고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늘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어야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애도반응은 정상적인 기능과 행동을 회복하는 재편성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죽은 이에게 투사되었던 리비도(libido)가 새로운 애정의 대상을 향해 해방되면서 대상과의 애착관계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망자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감정이 내재화된 양가감정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찾게 되고 스스로의 역할과 가치관에 대해 재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고 스스로에게로 향하게 되었던 적개심을 해소하며 애도반응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종된 아동의 유가족이 겪는 상실의 반응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요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대상이 ‘사망’하거나 ‘영구 상실’된 것이 아니라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실종은 현재의 종적을 잃어버린 상태를 이야기하지만, 유가족의 가슴에는 상실의 고통과 함께 역설적으로 재회의 희망을 심어준다. 대상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찾아내서 다시 만나고 말겠다는 희망은 애도반응의 초기단계인 ‘상실에 대한 부정과 분노’에 유가족들을 머물게 한다.

또한 대상이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는 믿음은, 대상이 납치되거나 감금되어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을 키우게 된다. 불안은 일상생활을 잠식하고, 가족들은 실종된 자녀가 겪고 있을 고통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걱정하게 되면서 점차 자동적이고 비현실적인 비적응적 사고유형 (Maladaptive thought pattern)에 길들여지게 된다.

요컨대, 실종자의 유가족들이 실종된 대상에 대해 겪게 되는 상실의 반응은 정상적인 애도반응의 흐름에서 너무도 쉽게 병적인 애도반응으로 고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종선고’라 함은 법률적으로 부재자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에, 이해관계인 또는 검사의 청구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법원의 신고이다. 즉, 유가족은 일정기간 이상 지속된 실종자에 대한 사망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행 민법에서는 보통실종은 5년, 특별실종은 1년의 실종기간을 요하지만, 실종 대상에 대한 병적 애도반응이 짙어질수록 유가족들은 5년이 아닌 10년, 20년이 흐르더라도 대상을 찾고, 항의하는(search, protest) 애도의 부정단계에 계속하여 머무르게 된다. 실종된 대상과의 재회에 대한 유가족들의 마음 속, 실낱 같은 희망은 결코 꺼지지 않고 유가족들로 하여금 강박과 집착에 얽메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가슴을 옭아매는 그 강박은 매 순간마다 지금 어디선가 고통 받고 있을 대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걱정으로 자라나간다. 머리 속을 파고드는 실종자에 대한 강박적 사고는 집착과 우울로 차차 유가족들의 정신과 삶을 조각낸다.

 

얼마전 발표된 국가지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 해동안 실종된 아동은 3만 7522명으로 이 중 대다수인 3만 7174명은 보호자에게 인계 되었지만 그 중 348명은 발견되지 못했다. 실종된 아이들을 찾지 못한 경우는 2011년 75명에서 2012년 158명, 2013년 227명에 이어 348명으로 늘었다.

지금도 수백 수천의 실종아동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순간순간 그들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 옛말엔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자녀의 상실은 부모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마 가슴에 묻지도 못한 실종된 아이들은 부모의 가슴 속에서 가시공처럼 구르며 매순간 일상을 아프게 찔러온다. 해가 갈수록 장기 실종 아동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매년 늘어가는 신음하는 가정의 수만큼 커져가는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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