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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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는 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뇌가 ‘깨어있음’과 ‘잠듦’을 조절하는 복잡한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오렉신(orex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이 신경전달물질의 특징과 수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8년, 일본 쓰쿠바대학교의 야나기사와 마사시(Masashi Yanagisawa) 교수는 오렉신이라는 신경펩타이드를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오렉신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며, 우리가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오렉신은 뇌 속의 각성 스위치라고 일컬어지며 수면과 각성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물질입니다.

오렉신의 작동 원리는 무엇일까요?

 오렉신은 뇌의 여러 각성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켜 각성을 촉진합니다. 예를 들면,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경로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피곤해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 갑작스러운 위험에서 반응하게 해주는 반사적 각성은 모두 오렉신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 오렉신 시스템이 손상되거나 기능이 저하될 경우, 수면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질환이 나타납니다. 실제로 기면증 환자에게서 오렉신 수치가 현저히 낮게 나타났고, 이는 야나기사와 교수팀이 쥐 실험에서 오렉신 유전자 결손 마우스가 기면증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것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수면과 각성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날 수면 문제는 신경전달물질 수준에서 조절되는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불면증이나 주간 졸림과 같은 증상은 오렉신 시스템의 과잉 혹은 결핍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렉신 수용체를 차단하여 각성 시스템을 억제하는 오렉신 길항제(dual orexin receptor antagonist) 계열의 수면제들이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수보렉산트(suvorexant), 레메보렉산트(lemborexant)는 오렉신 신경전달의 차단을 통해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수면 유도를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약물은 기존의 졸피뎀이나 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와 달리, 중추신경계의 억제가 아닌 각성의 해제를 유도하여 수면 구조를 더 자연스럽게 유지하게 해줍니다. 따라서 수면의 질 향상과 중독 가능성 감소라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숙면을 위한 뇌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다음과 같은 루틴을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렉신 시스템이 수면과 각성을 조율하는 ‘뇌의 지휘자’라면, 우리는 그 지휘자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돕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래는 뇌의 수면 리듬과 오렉신 균형을 돕는 생활 속 숙면 전략입니다.

첫째,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하기

 오렉신은 생체리듬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오렉신 분비는 기상 시점을 기준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일정한 기상 시간은 뇌의 각성 리듬을 안정화시키는 핵심 요소입니다. 주말에 늦잠을 자는 습관은 월요일 아침의 각성 곤란과 수면 위상 지연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평일과 주말 모두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기상 후 30분 이내 햇빛 쬐기

 오렉신 분비는 빛 자극에 따라 조절됩니다. 아침 햇빛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오렉신 활성화를 촉진해, 낮 동안의 활력을 끌어올립니다. 햇빛은 시신경을 통해 뇌의 시상하부에 전달되며,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오렉신 활동을 증가시킵니다. 특히 아침 햇빛은 뇌가 ‘낮이 시작되었음’을 인식하게 하여, 그날 하루의 각성 수준과 수면 압력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셋째, 자기 전 1~2시간 전부터 조도 낮추기

 뇌는 빛을 통해 낮과 밤을 구분합니다. 스마트폰, 조명 등의 밝은 빛은 오렉신 활동을 연장시켜 잠을 방해합니다. 어두운 환경은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오렉신 활성을 자연스럽게 억제하여 수면 유도를 도와줍니다. TV, 스마트폰, 태블릿의 블루라이트는 오렉신 경로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화면 노출은 최소화하고 은은한 조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가벼운 운동과 명상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오렉신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스트레스를 줄입니다. 특히 잠자기 전의 가벼운 스트레칭과 명상은 과활성화된 각성 시스템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걷기, 요가, 스트레칭 등의 저강도 운동은 교감신경과 오렉신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명상이나 복식호흡을 함께 실시하면 심박수와 뇌파를 안정시켜 수면 전 이완 상태로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섯째, 카페인과 알코올 절제

 카페인은 오렉신 수용체를 자극하여 각성을 유도합니다. 카페인은 아데노신 수용체를 차단하여 뇌의 졸림 신호를 방해하며, 동시에 오렉신 활성을 증가시켜 수면을 지연시킵니다. 알코올은 처음에는 졸음을 유도하지만, 체내에서 분해되면서 각성 반응을 촉발시켜 오히려 수면 후반의 각성과 수면 질 저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오후 2시 이후의 카페인 섭취는 숙면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알코올은 처음에는 억제제로 작용하지만 오히려 수면 후반에 각성을 증가시켜 오렉신 시스템에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야나기사와 교수의 연구는 수면이 뇌의 작동을 멈춰버리는 과정이 아닌, 각성 시스템을 조절하고 뇌 내 균형을 되찾는 정교한 과정임을 알려줍니다. 오렉신은 그 중심에서 우리의 깨어있음을 지키는역할을하는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느낀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면담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숙면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성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놓아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광화문숲 정신과 & 수면센터 ㅣ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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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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