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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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을 드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시는 분이라면 진료실에서 이런 질문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내과나 외과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는 약을 먹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이 크지 않지만, 유독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왠지 모를 걱정이 크고, 주치의 역시 환자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한 번쯤은 약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을 하곤 합니다. 대부분 약을 평생 먹거나, 의존하게 되거나,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씀하시고, 그런 걱정에 대한 주치의의 답을 들은 뒤에는 안심을 하고 약을 복용하시곤 합니다.

 이렇게 정신과 약을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도, 약을 중단할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호전이 되면, 반대로 약을 끊는 것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곤 합니다. 증상이 다시 생기는 것에 대한 불안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정신과 약을 먹은 내 모습이 정말 내 모습인지, 아니면 정신과 약을 먹지 않은 모습이 내 모습인지에 대한 혼란입니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복용하게 되면, 우울/불안 같은 감정이 줄어들고, 부정적인 생각도 같이 줄어들기 때문에 무엇이 내 원래 상태인지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특히 우울/불안 같은 상태가 오래 지속된 경우에는, 성격이 함께 변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더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정신과 약을 중단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원래 내 모습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증상에 대한 고통으로 이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기에, 뒤늦은 고민을 시작하는 셈이죠.

 이 고민의 시작은 약을 먹기 전, 가장 건강한 시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시점을 찾을 수 있다면, 내가 왜 그 시점을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하는지 요소들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건강한 시점의 요소들이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며 어떻게 바뀌는 지도 천천히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죠. 그러다보면 그 시점 어디에선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시작하고,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그 이후에 개선이 된 현재 상황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런 여정을 확인하다보면, 내 모습이라 하는 것은 결국 언제나 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변하는 내 모습 하나 하나가, 가짜가 아닌 정말 내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있기도 하고, 내가 원치 않는 내 모습이 있기도 한 것 뿐인 것이죠. 내가 변하지 않는 존재라면 원치 않는 내 모습을 미워하고 두려워 할 수밖에 없겠지만, 내가 변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은 일시적이며, 내가 원한다면 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역시 알아차리게 됩니다. 내가 내 모습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약물 치료인 것입니다.

 그러니 원래 내 모습이라는 주제에 대해 갇혀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나는 언제나 변하는 존재이며, 내가 어떤 내 모습을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고민하여 결국 나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약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재옥 원장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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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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