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조울증과 조현형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어요. 30대인 지금은 다행히 약이 잘 들어서 예전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어요. 과거에 망상이나 기분에 치우쳐서 맥락 없이 기억된 일들이 이제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요.
그런데 이것이 문제될 때가 생기네요. 대화 도중에 예전 일들을 질문받으면 그 당시의 일을 혼동하고 잘못 말할 때가 많아요. 대화 상대에게 미안하고 아찔한 경우도 있어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러지 않았을까.’하고 짐작하다 보면 순간 실제로 그랬던 것 같은 확신이 들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나중에 확인하면 실제와 다른 잘못된 이야기를 한 것인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기억을 혼동하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기억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우선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이 이전보다 호전되셨고, 삶의 질도 향상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오랜 기간 이어지는 증상과 그 치료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잘해 오셨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울증과 조현형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정확한 진단 시기 및 이후 증상의 진행 추이,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적어 주시지는 않았기에 남겨 주신 사연만으로 답변을 드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진단 및 치료 과정에서 이미 사연자님께서 본인의 진단명에 관련된 정의나 주요 증상, 치료 방법에 대한 정보들은 많이 얻으셨으리라고 예상합니다. 조울증의 경우 경조증 또는 조증 삽화와 우울증 삽화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조증 삽화에서 사고 비약이나 사고가 연달아 나타나는 주관적 경험 등은 고민하고 계신 기억이나 인지에서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조증 증상이 심할 경우 망상이나 환각과 같이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양성증상과 유사한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조현형 성격장애의 경우 대인관계에 대한 욕구가 결여되어 있으며, 특이한 행동이나 사고로 인해 본인이 느끼는 불편감은 없으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단절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현병에 비해 증상이 비교적 경미하며 조현병과 생물학적, 임상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현형 성격장애에서도 조현병보다는 경미할지라도 인지적 왜곡이나 연속적인 기억, 시공간에 대한 지각에서의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어떤 순서로 일어났고 그 일을 누구와 함께 경험했는지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는지 자체가 확실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요.
사연자님의 경우 망상이나 기분 변화와 관련된 증상들은 약물을 통해 많이 호전되었지만, 기억에서의 혼동으로 인한 불편감을 여전히 많이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정신질환이 이어지고 그에 대한 치료를 이어 가는 과정에서 병 자체도 변화하는 양상을 보일 수 있고, 치료에 대한 반응으로서 증상에서의 변화를 경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기억에서의 혼동과 관련된 증상 역시 망상이나 기분 변화와 관련된 증상이 호전된 것처럼 앞으로 호전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재 받고 계신 치료를 꾸준히 이어 가시면서 혼동되는 기억을 잘 관리하시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 공간, 맥락에 따라 세분화된 지인들을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인물과 연관된 사건, 시간, 공간 등을 구분해 두면 여러 기억이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관련된 기억의 맥락을 찾기가 보다 수월해질 것입니다.
이와 함께 무리하게 아는 것처럼 답변한 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기보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과의 친밀도, 신뢰 관계에 따라 사연자님이 겪고 계신 정신적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억의 혼동이 있음을 밝히실 수도 있고, 그렇게 하기가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관계라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그때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겠느냐.” 혹은 “확인해 보겠다.” 정도로 상황을 마무리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상대방이 사연자님이 기억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잘못된 기억이나 확신으로 답변하다 보면 신뢰를 잃을 수 있고,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평상시에 스마트폰이나 노트, 일기 등을 활용해 메모하거나 일정표에 그날 한 일, 만났던 사람 등을 기록해 두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실제 일어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기억을 추적하는 데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들과 함께 현재 복용하시는 약물을 통한 치료를 꾸준히 지속하시고, 필요할 경우 상담이나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시는 것이 증상을 잘 관리하며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답변드린 내용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삶의 질이 계속 좋아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