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좋아하는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것을 보며 감탄하신 적, 아마 누구나 있으실 것입니다. 좋아하는 종목이나 선수는 개인 선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이 저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대단한 움직임을 보이는 운동선수들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 뒤에 숨어 있을 피나는 연습과 노력, 그리고 타고난 재능과 자질이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해 보고는 합니다.
물론 운동을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일반인과는 다른 뛰어난 운동신경과 신체적 조건을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을 잘하기 위한 이런 선천적 조건과 더불어 후천적인 노력 역시 운동 실력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끊임없이 훈련에 매진하는 것이겠죠.
운동을 하는 데 영향을 주는 뇌의 영역은 다양합니다. 또, 운동의 종류에 따라 뇌의 어떤 영역의 기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반복적인 운동에 의해 어떤 영역이 더 활성화되는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골프선수들이 대조군에 비해 이마마루엽 신경망(fronto-parietal network)의 회백질 부피가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이빙 선수들의 경우에는 중심앞이랑(precentral gyrus)의 회백질이, 체조선수들은 겉질척수로(corticospinal tract)가 더 발달했다는 선행 연구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골프선수에서 발달한 이마마루엽은 집행기능을 관장하는 영역으로서, 몸이 다양한 동작을 빠르고 정확하며 유연하게 협응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을 조절하는 능력과 관련 있습니다. 또한 주의 집중 및 복잡한 문제해결 및 작업기억, 정보처리 및 행동 계획을 짜는 데도 관여하는 부위입니다. 반면 다이빙 선수들에게서 발달한 겉질척수로는 대뇌 겉질에서 척수로 내려가는 신경 섬유 다발로, 의지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능력과 관련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팔을 앞으로 쭉 뻗거나, 다리를 앞으로 내미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 내도록 합니다.
골프선수의 경우 골프채를 휘둘러 정확하게 공을 맞추는 동작, 자신의 현재 경기 기록을 떠올리며 전략을 짜는 것, 골프장 주변의 환경에 관한 정보처리 및 그에 대한 적응 능력 등이 요구되기에 그와 관련된 뇌의 영역이 더 발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다이빙 선수의 경우 다이빙대에 올라서서 정확하게 다이빙 자세를 취하고 깔끔하게 입수하는 것 같이 비교적 명확하고 계획된 동작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요구되기에 이에 관여하는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이죠.
유사하게 축구선수는 경기 흐름에 따른 분석과 예측, 상황 판단이 중요하기에 이와 관련된 대뇌피질의 판단 능력이 요구되는 반면, 야구나 피겨스케이팅처럼 사전에 정해진 사인이나 계획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종목에서는 대뇌피질보다 정확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데 관여하는 소뇌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처럼 종목에 따라 반복 훈련으로 인해 더 발달하는 뇌의 영역은 다를 수 있으며, 이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뇌의 영역에는 연결 통로가 더 많아지고, 연결 강도도 더 세지는 것입니다.
반면 종목에 관계없이 비교적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뇌의 기능도 있습니다. 바로 시각피질과 기억에 관한 것입니다. 눈동자를 통해 입력된 시각 정보는 뇌 뒤쪽, 즉 후두엽에 있는 시각피질(visual cortex)로 전달되며, 이 시각 정보는 다시 위쪽의 배측흐름(dorsal stream)과 아래쪽의 복측흐름(ventral stream)으로 이동합니다. 배측흐름에서는 정보를 두정엽으로 보내 대상의 공간적 위치를 파악하고, 복측흐름에서는 정보를 측두엽으로 보내 대상의 모양이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전운동영역(premotor cortex), 보조운동영역(supplementary motor cortex), 운동영역(motor cortex)에서 몸을 움직이기 위한 준비 및 실제 운동을 실행하게 됩니다.
이처럼 시각피질에서의 정보처리 능력은 이후의 운동수행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많은 종목에서 운동선수의 시각 능력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야구나 축구처럼 움직이는 공을 계속 주시하고,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인 종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훈련된 축구선수는 일반인에 비해 공에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이 짧으며, 다른 선수가 찬 공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한편 기억과 관련해서는 정보처리 및 작업기억, 절차기억이 뛰어난 수행과 관련 있습니다. 시각을 비롯한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된 정보는 감각기억의 형태로 1~2초에 해당하는 매우 짧은 시간 머물다가 작업기억으로 전환됩니다. 그 과정에서 감각기억에서 전달된 정보를 처리하며, 작업기억에 있는 정보 중 반복되는 것 혹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장기기억에 남게 됩니다.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평생 또는 비교적 매우 오랜 기간 기억에 남아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익숙해진 동작들은 작업기억 또는 장기기억에 남아 비슷한 상황에서 좋은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 한가지 동작에 연결된 동작은 하나의 기억 단위, 즉 청크(chunk)로 인식되어 더 빨리, 쉽게 인출됩니다. 예를 들어, 공을 받고 다시 패스로 연결하는 것을 반복 훈련했을 때는 이 두 가지 동작이 하나의 연결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절차기억 역시 운동에서의 수행을 향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절차기억은 장기기억의 하위로 볼 수 있는 암묵기억으로서 자전거 타는 법, 수영하는 법처럼 ‘어떻게’, 방법에 관한 기억으로서, 몸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기억입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몸에서 익히면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이죠.
반복되는 훈련은 몸의 기억, 즉 절차기억이 활성화되도록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아도 몸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동작들이 나오곤 하는 것이죠. 물론 긴장을 하거나 주의 집중이 어려울 때는 절차기억에 있는 정보들을 인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예기치 못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꾸준한 연습과 함께 실전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평상시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멘탈 코칭의 중요성이 강조되곤 합니다.
이처럼 운동은 뇌의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되는 데 도움을 주며, 기억력 및 인지 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또, 반대로 주의 집중과 기억 능력 향상을 위한 전략을 활용해 운동수행 능력을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비단 운동선수만 아니더라도, 여러분도 일상에서 운동을 즐기시면서 몸과 뇌 건강을 모두 챙겨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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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