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손톱 거스름을 뜯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손톱 옆 표피 껍질이 살짝 뜯겨져 있으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긴 합니다. 자꾸만 만지작거리고 뜯어내고 싶어지죠. 손톱깎이로 깔끔하게 잘라내면 좋겠지만, 결국 손으로 조금씩 조금씩 뜯어내게 됩니다. 쭈욱 밑에까지 찢어져 피가 나기도 합니다. 뜯기기는 했는데 옆에 다른 거스름이 남아서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결국 어느새 보면 하루 종일 거기를 만지작거리고 있곤 합니다.
사실 누구나 흔히 겪는 경험입니다. 당연히 별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물론 상처가 나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소독은 잘 해줘야겠지요.
하지만 언제나 정도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손톱을 뜯는 정도가 아주아주 심한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굳이 멀쩡한 손가락의 살을 벗겨내기도 합니다. 성한 손가락이 없고 언제나 손가락 끝에는 상처가 가득한 분들도 많습니다. 때때로 감염이 되어서 부어오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뜯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손을 뜯는 것 뿐이 아닙니다. 이빨로 손톱을 뜯어내기도 합니다. 손가락뿐 아니라 얼굴 피부를 뜯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런 분들은 무의식중에 항상 상처 부위를 매만지거나 뜯어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해지곤 하죠. 또는 의식적으로 피부 뜯기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집중해서 한참을 뜯어내고 상처를 내다 보면 뭔가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후련해지기도 합니다.
정말 극단적으로 심한 경우에는 피부 이식을 해야할 정도로 심한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감염이 심해져 패혈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피부 뜯기는 대단히 흔한 습관이고 대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다면 결코 '그냥 못된 습관' 으로 치부하기만 할 정도로 가벼운 문제도 아닙니다.
DSM-V에서는 '피부뜯기장애'라는 병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런것도 정신과 질환이야?" 라고 놀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진단명이긴 하죠. 이것만을 문제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서 실제로 진단이 되는 경우도 많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다른 문제로 내원 했다가 추가적으로 이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피부뜯기장애는 분명 치료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일시적인 피부 뜯기 행동 자체로 진단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해서 감염이나 피부 유지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피부뜯기 때문에 일상생활 기능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 주관적인 불편감이 심한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한 '피부뜯기장애'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피부뜯기장애'는 DSM IV에서 처음으로 등재된 진단명입니다. 원래는 '기타 충동조절장애'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피부를 뜯는 행위의 병리적 핵심이 '충동 조절의 실패'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DSM V에서 '강박 관련 장애'가 새로운 진단 카테고리로 생기면서 피부뜯기장애도 여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 피부를 반복적으로 뜯는 행위가 사실은 강박 증세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피부를 뜯는 것도 일종의 강박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피부뜯기장애로 진단이 되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다른 행동 영역에서도 강박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입니다. 이미 다른 문제로 인해 강박장애로 진단된 환자분들에게서도 피부 뜯기 행위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관찰되곤 합니다.
따라서 피부뜯기가 장애로 진단될 만큼의 심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다른 정신과적 질환이 있지는 않은지를 반드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저 강박장애나 우울장애, 불안 장애 등이 있다면 반드시 함께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강박행동이 그러하듯 심리적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가 증상을 유발하고 악화시키기 때문에, 근본적인 수준의 증상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피부 뜯기라는 표면적 상황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약물치료와 면담을 통해 문제가 되는 수준의 불안이나 우울은 호전이 되었음에도 피부 뜯기는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강박적 피부 뜯기는 일종의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강박행동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습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된다는 것은, 무의식이 그 행동을 통제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대단히 많은 일을 하지만 그중 우리가 직접 '의식'하고 '통제'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기억을 하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감정과, 행동, 심지어 보고 듣고 말하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훨씬 더 큽니다. 행동의 통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무의식이 통제하기 시작하는 행동은 때때로 '습관'이 됩니다. 피부 뜯기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박적인 습관이 된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피부 뜯기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집중하며 피부를 뜯는 환자분들의 경우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피부를 뜯는 순간에는 무의식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 피부를 뜯는다] 로 이어지는 패턴 자체가 이미 강박적 습관이 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부뜯기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역시 '습관'의 교정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피부를 뜯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습관을 교정하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좀 더 체계화된 방법 중에서는 습관 전도 요법(Habit Reversal Therapy)을 예로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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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처럼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직업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습니다. 정성스런 상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 자신에게 궁금했던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편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