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숲에서 살아남기(13)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바야흐로 전 국민이 재테크에 열광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에 따라 투자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 또한 인기입니다. 이제 길이나 카페에서도 유튜버들의 투자법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보일 정도이니까요. 경제 유튜버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중 일부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점점 자극적인 내용만 송출하면서 혹자는 이들을 ‘금융 포르노’라고 부르며 경계하기도 합니다. 사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유튜브의 특성상 이런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들 중에는 정말 소위 ‘투자의 귀재’, 혹은 ‘월가의 현인’으로 불리고 실적 또한 그에 걸맞은 분들도 있습니다. 이제 주식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들도 ‘워렌 버핏’이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식 투자의 고수들은 책을 내기도 하며 자신의 투자법을 전수하고, 실제로 이들의 투자법은 꽤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므두셀라 기법(오래동안 안정적인 기업에 긴 시간 투자해 수익을 얻는 투자방식)을 권해왔습니다. 10살 때 1000달러도 수익률 10%에 복리를 적용하면 10년 뒤에는 2600달러, 50년 뒤면 11만 7400달러가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워렌버핏
정말 합리적이고 완벽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굳이 이 투자의 귀재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이 방법이 투자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이고 실패가 적은 방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인 투자 방식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주식이나 코인장에서 손해를 보곤 합니다. 머리로는 아무리 이 이론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심지어 바로 어젯밤에는 이들의 투자 강의를 들으며 감동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우리는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순간의 공포를 버티지 못하고 손실이 일어날 것이 뻔한 터무니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째서 남들의 투자법이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걸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째서 우리는 고수들이 말하는 ‘합리적이고’, ‘말이 되며’, ‘과학적인’ 투자법을 선택하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를 우리의 뇌의 작동원리에서 찾습니다.
<트롤리 딜레마>
“열차가 달려가는 기찻길에 다섯 사람이 서 있다. 이대로 가면 다섯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들을 구하는 방법은 열차에 타고 있는 드니스 Denise가 조종간을 당겨 다른 철도로 진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다섯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만 죽게 될 것이다. 드니스는 조종간을 당겨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다섯 사람을 구해야 할까?”
필리파 풋이 제시한 그 유명한 사고 윤리학 실험인 ‘광차 문제(Trolley problem)’입니다. 이어서 진화 생물학자 마크 하우저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트롤리 문제를 제시했고, 그중 89 퍼센트가 드니스가 조종간을 당겨 죽는 사람의 수를 줄여야(원래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한 명을 희생하더라도) 한다고 답했습니다.
마크 하우저는 이번에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었습니다.
<인도교 딜레마>
“그 전처럼 열차가 다섯 명의 목숨을 위협하며 달려가고 있다. 열차와 다섯 인부 사이에 트랙 위를 가로지르는 인도교가 있다. 프랭크는 그 위에 낯선 사람과 함께 서 있다. 만약 그가 덩치 큰 낯선 사람을 밀어 떨어뜨린다면 열차는 멈출 것이다. 낯선 사람은 목숨을 잃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살아남는다. 프랭크는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낯선 이를 밀어도 괜찮을까?”
놀랍게도 사망자의 수(다섯 명이 살고 한 명이 희생된다)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이번에는 낯선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상되는 결과와 사망자수는 같았는데도 말이지요.
조슈아 그린 등은 이 두 가지 문제의 답을 결정할 때 뇌의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같은 딜레마를 담고 있는 문제이더라도 인간과의 접촉이 없이 단지 조종간을 당기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첫 번째 질문의 경우 뇌에서 추상적 문제 해결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 즉 우내측 이마이랑, 양측 두정엽이 활성화되었고, 직접 눈앞의 인간을 밀어야 하는 두 번째 질문의 경우 감정과 사회인지와 관련된 뇌 영역인 내측 전두엽과 후대 상회, 모이랑에서의 활동량이 증가되었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조슈아 그린은 인간은 같은 결과가 예상되는 행위더라도 그것에 대하여 인간적 접촉이 있느냐 없느냐(개인적인 이슈인가 익명성이 강한 이슈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뇌의 부위를 사용해 결정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같은 가치(이 딜레마에서는 무고한 한 인간의 생명)를 희생하는 행위이더라도 그 행위가 직접적일수록, 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과 관련되어있을수록 인간은 판단에 있어서 이성보다는 감정의, 사전 계획보다는 사회적 맥락에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크게 보면 우리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윤리의식을 만들어내는지, 우리가 어떠한 생물학적 기준으로 도덕과 비도덕을 판단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들은 두 가치판단의 차이를 피험자의 ‘시점’의 차이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트롤리 딜레마에서 피험자는 사건의 바깥에서 결정을 하는 주변인의 시점에서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도교 딜레마에서 피험자는 사건의 주체로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그 사건의 관찰자보다는 주체에 가까워질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결과 위주보다는 동기와 감정 위주로 판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위의 맥락에서 워렌버핏의 투자 기법인 므두셀라 기법을 우리가 실제로 적용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봅시다. 므두셀라 기법을 트롤리 문제의 시점으로 관찰하면 아래와 같이 명쾌하고 간단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천만 원의 돈을 월 수익률 5%의 복리를 적용할 때 5년 뒤면 약 1767.92%의 수익률을 내므로 1억 8천6백만 원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자산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으면 당신은 틀림없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투자처는 아마도 월 수익률 5%가량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투자처에 천만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이 아는 가장 합리적인 부자로 가는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관찰자의 시점으로 돈의 흐름을 봤을 때, 즉 남의 돈일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때 우리는 우내측 이마이랑과 양측 두정엽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돈이 들어가는 순간, 즉 트롤리의 문제에서 인도교 문제로 바뀌는 순간, 우리의 상황 인식은 순식간에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됩니다.
“당신은 지난 2년간 쉬지도 않고 친구도 만들지 않고 애인과 데이트 한 번 하지도 못한 채로 모든 걸 희생해가며 원금 천만 원을 벌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당장이라도 당신이 번 돈으로 평소 때 가지고 싶었던 모든 것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 모든 자신의 욕망을 참고, 지금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쾌락을 희생하여 미래를 위해 이 돈을 재테크에 투자하기로 하였다.
당신이 이 월 5%의 수익을 5년간 안정적으로 낼 수 있는 투자처에 투자를 하면 ‘꽤 높은 확률로’ 5년 후에는 1억 8천6백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실패하면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지난 7년간의 결실을 잃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고 희생했던 고된 7년의 시간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내심 속으로 비웃었던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로 흥청망청 놀던 주변 친구들보다도 못한 상황에 빠지게 되리라.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그 상황을 아마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돈을 투자하려던 당신은 순간 고민에 빠진다. 만일 그동안 부모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비가 필요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그게 아니더라도 갑자기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이 투자하려던 투자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단톡방에서 듣는다.”
그 문제가 설령 도덕적 이슈이던 또는 경제적 이슈이든 간에 인간은 자신이 그 상황에서의 관찰자이냐 행위의 주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판단을 합니다. 소유냐 존재냐의 판단에서 철학자들은 존재의 손을 들어주지만 우리의 뇌는 소유의 손을 들어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내가 얼마만큼 적극적인 역할인가, 그 돈이 남의 돈인가 나의 돈인가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투자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참고를 하고 교훈을 얻을 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있어서 불합리를 배제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원금은 올리고 투자는 분산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한 곳에 투자할수록 우리의 뇌는 감정적이 됩니다. 따라서 투자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면 안 됩니다. 투자하는 돈이 내가 가진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모든 미래를 투자에 걸수록 우리는 가장 합리적이야 하며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시점에서 가장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단 하나의 투자처에 나의 전부를 걸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돈이 우리의 삶에서 전체가 아닌 일부일 때 그제야 우리는 워렌 버핏의 방식대로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비되는 그 돈이 누구의 돈이어야 할지를 정할 때에는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남의 돈과 나의 돈은 나에게 있어서 가치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자원의 가치는 그 소유자에 따라 매우 복잡하게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돈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누군가가 예산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주장할 때에는 그 사람이 말하는 돈이 자신의 돈인지 남의 돈인지, 또는 우리 모두의 돈인지에 대하여 가늠해볼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돈을 예로 들었지만, 이는 세상의 모든 가치 판단에 대하여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도덕기준, 우리가 하게 될 결정에 대한 그 모든 판단기준은 내가 관찰자가 되느냐, 주체자가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됩니다.
그러니 부디 세상에 있는 타인의 과오나 불행에 대해서 조금만 더 관용적이고 공감적인 시선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과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우리가 운이 좋게도 그들의 상황을 직접 겪지 않고 관찰자의 시점에 머물렀을 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상황이 되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결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An fMRI Investigation of Emotional Engagement in Moral Judgment
Joshua D. Greene et al
Science 293, 2105 (2001);
DOI: 10.1126/science.1062872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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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