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이광민의 [슬기롭게 암과 동행하는 방법] (19)

[정신의학신문 : 마인드랩 공간 정신과, 이광민 의학박사] 

 

 

 

절망 가운데서 바라볼 수 있는 것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라는 영화는 실제 암 경험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고, 영화화한 이야기입니다. 이윤혁 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마지막 임종기까지의 과정을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결코 새드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해피엔딩에 가깝습니다. 죽음 자체의 절망이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꿈을 이루어내는 가치와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이윤혁 씨가 앓았던 ‘결체조직성 작은 원형 세포암(demoplastic small round cell tumor)’은 암 중에서도 극히 드문 암에 속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케이스가 별로 없습니다. 이 암의 무서운 점은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몸 어딘가에서 생겼을 거라고 추정이 되고, 몸 어딘가에서 암 덩어리가 자라나게 됩니다. 암이 시작된 곳을 안다면 그곳을 수술하고 이후 항암치료를 할 텐데, 어디서 생성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암이 생성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윤혁 씨는 ‘뚜르 드 프랑스(매년 7월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일주 사이클 대회)’에 참가하기 전까지 총 두 차례의 개복 수술과 스물여섯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윤혁 씨는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린 후, 목표를 세워 ‘뚜르 드 프랑스’ 완주를 했습니다. 당시 의료진들은 만류한 일이었습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몸 안에서 암이 계속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혁 씨는 ‘뚜르 드 프랑스’ 완주라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목표를 이루어 냈습니다.

사진_네이버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스틸컷
사진_네이버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스틸컷

 

제인 톰린슨이라는 영국 여성은 유방암을 진단받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치료를 다 마쳤지만, 서른 살에 재발하여 그때 당시 6개월 정도밖에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톰린슨 씨는 그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철인 3종 경기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냈습니다. 그 후에는, 자전거로 미대륙을 횡단하는 업적까지 이루었죠. 6개월을 살 거라는 말을 들었던 톰린슨 씨는 실제로 6년을 더 살았습니다.

톰린슨 씨의 일화,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이윤혁 씨가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암 환자들을 위한 희망과 행복을 담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자신의 행복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절망 가운데서 삶의 끝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그것을 극복해내기 위한 가치와 희망, 소망이 아닐까요?

삶의 의미와 가치는 결국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수용하는 데 있습니다. 거창한 희망과 소망이 아니더라도 조금 더 우리의 삶에 가까운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삶에서 내가 하는 역할, 지금까지 가져왔던 신념과 의지, 종교적인 가치 등등. 내가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불안을 받아들이는 세 가지 키워드

 

이윤혁 씨와 톰린슨 씨의 이야기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삶의 가치를 발견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받아들임’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삶은 언제나 현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꾸지 못하는 과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래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내 옆에 있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게 소중한 것을 찾아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필요한 생각을 밀어내는 것이죠. 때에 따라 이 불필요한 생각들을 적어보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들이 내가 바꾸지 못할 것들에 대해, 생각을 쓸데없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을 생각하며 스스로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요. 이러한 생각을 현재로 옮기기 위해서는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 거기에 나의 생각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의사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을지라도 만에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건강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희망, 때에 따라서는 나의 직업적인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마지막까지 소망을 품고 나누는 것에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상황에서도 내가 가진 소망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입니다.

 

현재를 사는 것, 희망을 잃지 않는 것, 마지막까지 소망을 가지는 것. 이 세 가지가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저 또한 의사로서 환자에게 삶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성인 어른은 암에 관해 대화로 풀어내고 이해를 하는 게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암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 줘야 할지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마지막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의사)’ 선생님의 책에 나오는 시 한 편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구로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생의 수레바퀴』 中)

 

‘고잉 온 캠페인’은 대한암협회와 올림푸스한국에서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그중 ‘고잉 온 토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 박사와 암 경험자가 만나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대처법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암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소통 채널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영상 내용을 정리해 연재합니다.

※ ‘고잉 온 토크’ 강의 직접 듣기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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