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렌즈 (12)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범죄 발생 건수는 한 해에 약 3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하루 평균 80건이 넘는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의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봤을 때 성범죄가 일어나는 빈도는 훨씬 높을 것이다.

성범죄를 일으키는 남녀 비율을 조사해보면 남성의 성범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피해자도 대부분 여성이다. 이런 불균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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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보려 한다. 최근에 두드러지고 있는 남혐, 여혐 현상(‘남혐, 여혐의 심리’ 글 참조)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도 빠뜨리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근본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어느 성별이 더 낫다는 식으로 싸우자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특정 성별을 옹호하거나 지지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 관련된 이야기에서 꼭 구별해야 하는 것이 사실과 가치의 구분이다. 과학은 사실을 이야기하는 학문이지,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학문이 아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이해하려면 수십만 년 전 우리 조상 수컷과 암컷의 심리 기제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현재의 남성, 여성과 구별하기 위해 수컷, 암컷이라는 용어를 쓰겠다). 성관계라는 행위에 있어서 조상 수컷과 암컷에게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분명 이 부분을 명확히 이해해야만 한다. 조상 수컷과 암컷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무엇일까? 그것은 임신의 여부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조상 수컷은 임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관계 횟수와 자손 생산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다. 역사를 보면 몇 백 명의 자손을 가진 황제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하지만 암컷은 임신의 기간 때문에 물리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조상 수컷과 암컷의 심리는 다르게 진화했을 것이다

조상 수컷의 입장에서 암컷과의 관계에서 일으킬 수 있는 오류는 두 가지가 있다. 암컷이 나에게 성적 관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 그리고 암컷이 나에게 성적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가 그것이다.

각 오류에 대한 득실을 조상 수컷의 입장에서 추정해보자. 전자의 경우, 잃게 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성관계의 기회를 날리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손 생산의 확률을 줄이는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잃는 것이 무척이나 크다. 후자의 경우, 잃는 것은 무엇일까? 대쉬를 했다가 차이는 경우일 테다. 잃는 것은 민망함 정도일 테다. 잃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수컷은 후자의 오류를 더 많이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현재 남성의 심리에도 남아 있다. 관련된 실험은 필자의 다른 연재 글(남녀가 스킨십에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을 참조해주시기 바란다.

 

이 부분을 이해한다면 왜 성범죄의 가해자가 주로 남성인지에 대한 이해의 기초가 마련되리라 생각한다. 수십만 년 전 사회규범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상황에서의 수컷 중 일부는 암컷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개체들이 있었을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그렇게 해서 생겨난 자손들이 비슷한 심리를 가진 개체가 되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성범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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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상 암컷의 입장은 어떨까? 조상 암컷의 입장에서도 조상 수컷과의 관계에서 일으킬 수 있는 오류는 두 가지이다.

조상 수컷이 나에게 성적 관심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조상 수컷과는 달리 잃은 게 별로 없다. 어차피 임신이라는 기간 때문에 성관계 횟수를 늘린다고 해서 자손 생산이 많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상 수컷이 나에게 성적 관심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조상 수컷이 씨만 뿌리고 달아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때는 암컷은 10개월이라는 임신 기간과 이후 양육의 문제까지 오로지 짊어지게 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이 경우 암컷이 잃는 것이 너무나 크다. 손실의 정도가 암컷과 수컷은 정반대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컷과 암컷의 심리도 다르게 진화했다. 조상 수컷은 성관계에 대한 역치를 낮추어서 횟수를 늘리려고 하고, 조상 암컷은 역치를 높여서 조심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현재 남성과 여성에게도 남아 있다. 예전에 성관계를 하기까지 가능한 시간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남성의 경우, 몇 시간, 며칠 같이 짧은 시간에 몰려 있는 반면, 여성의 경우, 몇 주, 몇 달 같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에 몰려 있는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사회의 여러 현상을 봤을 때 상기에 기술한 진화심리학적 심리 기제는 현재의 남성과 여성에게 잔존해 있다. 성범죄를 들여다볼 때도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심리가 동일하다는 전제로 현상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 투성이가 될 테고, 이렇게 되면 서로 갈등만 증폭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차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

 

체외수정을 하는 물고기 중에 수컷이 임신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는 종이 있다. 이 종의 경우에는 암컷이 수정에 더 적극적이고, 수컷은 수정을 조심히 하려는 행동들을 보인다.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임신을 짊어지는 순간 감수해야 할 투자비용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글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의 편 가르기가 아니다. 상기 사실을 참조해본다면 수컷과 암컷의 심리 차이는 남성이라서,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임신을 하느냐의 여부에 갈리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자연의 뜻은 ‘스스로 그냥 그러하다.’이다. 이 글도 자연의 관점에서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6회 ‘성범죄의 심리’ 방송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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