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렌즈 (9)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글은 <정신과 의사가 본 영화 '매트릭스' -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 연재에서 매트릭스는 AI가 아닌 나 스스로가 만든 가짜 세계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무의식 -> (생각, 감정, 행동) -> 의식’이라는 프로세스에서 ‘사후’에 일어난 의식을 진짜 이유로 착각하기 때문에 매트릭스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사후’에 일어난 것은 절대 이유가 될 수 없다. 이유는 반드시 결과에 시간적으로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매트릭스의 대사 “Don't think you are, know you are.(네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마.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해.)"를 제시하고 이전 연재를 마무리하였다. 독자 분들에게는 이 문장이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필자에게는 너무나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지점을 같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사진_네이버영화 '매트릭스2' 스틸컷
사진_네이버영화 '매트릭스2' 스틸컷

 

우리는 우리 스스로 능동적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진짜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고리에 빠지면 우리는 점점 더 매트릭스를 공고하게 만드는 길이 된다. 매트릭스는 ‘사후’ 판단 체계인 의식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만들어낸 나라는 인식을 가짜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수동적으로 알아야만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이 한 끝 차이가 인생에서는 어마어마한 것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무지개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무지개를 말로만 설명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것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 말이기에 어떻게든 표현을 해보겠다. 마음속에 실제 무지개를 그리는 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필자는 필자로서의 최선을 다해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아무 생각하지 말아 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주체로서 아무 생각하지 않도록 나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 보자. 이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호흡이나 단전 같은 일부에 집중을 하면서 다른 생각들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순수하게 생각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생각의 주체는 누구인가? 내 생각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내 생각이지만 그것조차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내 생각을 끌고 가려하지 말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흘러가는 생각을 바라봐줄 수 있다면 거기서 내가 몰랐던 무의식들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 진짜가 숨어있는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자유 연상’이라고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연상들을 쫓아가는 것이다. 모피어스의 입을 빌리면 “Don't think you are, know you are.(네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마.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해.)”이다. 우리의 생각들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그렇게 되어 있으니, 관찰하고 알면 되는 것이다. 의지로 생각하려 하면 오히려 거기서 가짜들이 만들어진다.

사진_네이버영화 '매트릭스2' 스틸컷
사진_네이버영화 '매트릭스2' 스틸컷

 

필자와 상담한 많은 내담자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진짜 마음들을 발견하곤 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 성적이 저조함에도 수학에 집착을 하고, 수학과를 진학하겠다고 하는 학생. “어려우니까 더 해보고 싶다. 자신은 원래 쉬운 걸 별로 안 좋아한다.”라고 처음에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상담을 해보니, 어렸을 때 오빠만 편애하던 어머니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자신을 혼낼 때마다 오빠와 비교하였고, 논리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울면서 오빠에게 빼앗겼던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결핍을 이야기하였다. 라이벌링이 되어있는 오빠가 명문대 수학과에 진학해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과연 이 학생에게 수학이 단지 수학이었을까? 그건 의식적인 영역에서만 그렇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처절한 수단이 수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 능력이 저조함에도 거기에 그렇게 집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100명 넘게 무료 상담을 하였었는데, 모든 내담자의 내면에는 이렇듯 본인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짐들이 현실 의식에 달려있었다. 이것을 찾아주는 것이 psychotherapy라는 상담의 역할이다. psychotherapy라는 상담은 자유 연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내 생각을 이끌지 말고, 자연스럽게 둔 다음에 쫓아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의 무의식들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힘은 바로 거기에 숨어있다. 이런 것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주어야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하지 않은 채 내 인생을 끌고 가려고만 한다면 내 인생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를 움직이는 본질을 외면한 채 겉 가지만 건드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의학적 의미가 모피어스의 “Don't think you are, know you are.(네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마.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해.)”라는 말에 녹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느낀 소름 돋는 아름다움은 이 지점에 있었다. 말이야 말로 겉 가지일 뿐이다. 필자가 말로 전달한 겉 가지 이면의 깊은 의미가 독자들에게 꼭 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각자의 마음속에 그리는 무지개는 독자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겠다. 진심은 언젠가는 전달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3회 [‘정신과 의사가 본 영화 매트릭스’ ] 방송분의 일부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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