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렇게 흰 바탕을 보니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고는 싶지만, 아직 돈을 직접 벌 수준은 아니라서 그건 못하겠고. 너무 비싸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괜찮은 줄 알았어요. 사실은 익숙해지는 거라는 걸 알긴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중학생 때부터 힘들어지다가, 고등학생 때 절정을 찍고 고3 마지막 수능 3개월 동안 누워만 있었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의욕이 나질 않아서. 울 공간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고. 쉴 시간도 없고, 매일 2, 3시간만 자야 하는 상황에 힘들었나 봐요. 매일 아침마다 전날 밤에 그대로 죽어버렸더라면 좋았을걸, 이라는 생각도 매일같이 했어요.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3년 동안 매일 머리를 뜯었다고 해야 하나, 긁었다고 해야 하나. 머리를 하도 만져서 땜빵이 났어요. 지금은 의식적으로 만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만져요. 그땐 몰랐는데, 지금 이것저것 보니까 이런 것도 자해의 일종이라고 하더라고요.
입시가 끝나고, 개강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뒹굴거리면서 전 제가 좀 회복했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반년을 의욕 없이 누워만 있으면서 살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입시 때문에 제가 이러는 건 아니지만, 몸이 편해지면 마음도 어느 정도 편해질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원인을 몰라서 그런가. 아니면 아는데 제가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구요.
매일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끔찍하다고 느껴요. 친구들이 다 좋은 대학 가서 그런가, 제 대학 생각하면서 끔찍할 때도 많았고. 그렇다고 전에 공부했으면 그 정도는 갈 수 있었다며(이것도 피해망상일 수 있죠. 제가 멀쩡히 공부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겐 모르니까) 공부를 안 한 저를 탓하기에 그때의 저는 너무 아팠어요. 저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데도 잘 모르겠고 아무 생각 안 들고 왜 나 같은 거랑 그러려고 하지란 생각을 해요. 회장이나 과대처럼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감투를 써 놓고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얼만큼의 능력을 지녔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냥 나는 나 같아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고 아무도 나랑 친하게 지내길 원하지 않을 것 같고, 내 친구들은 친구들이니까 친구 해주는 거지 나에게서 얻어가는 건 하나도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해요.
방문을 닫고, 자러 침대에 누우면 그제서야 제가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침대에서는 마음을 놓았더니 이제는 밤이 되면 자꾸 숨이 막혀요. 목이 막히고, 답답하고, 그래서 일부러 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불안할 때도 그렇고, 일, 인간관계 같은 게 하나만 무너져도 다른 것들까지 균형을 잃고 무너져서 그래서 요즘 더 그러나 봐요. 몇 달 전부터는 낮에도 아무 일 없는데도 갑자기 숨이 막히고, 목이 막혀요. 목과 몸 사이 딱 그 부분이. 토할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자주 그러고, 제가 싫어하는 일이나 뭐 사소하게는 치과에 가는 일이나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불안하고 숨이 막혀요.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커가면서 자꾸 싫어하는 일들을 회피하고 있어요. 오늘만 해도 치과 예약을 미뤘거든요. 4시 예약인데 11시부터 숨이 막히고 불안해서 침대에서 못 일어날 만큼. 그래서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예약을 미뤘을 만큼.
누구와 싸우거나, 다투거나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제 몸이 피하는 기분이 들어요. 왜 싸웠는지,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왜 울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아요. 30분 정도면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아요.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그냥 편하게, 예전처럼 일상생활을 완벽히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일어나서 밥 먹고, 할 일 하고, 다시 자면서 꽤 멀쩡히 살고는 있지만, 전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도 준비하고, 친구들이 어떻게 하던 하나하나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넘겼으면 좋겠어요. 열정적으로 제게 주어진 일을 완벽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끝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될 대로 돼라 하면서 현재의 이 작은 열정으로만 열심히 하지 말고. 내가 점수를 잘 못 받거나 뭐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일이 아닌 양 그렇구나,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될 대로 되라지,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100% 충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목이 막히는, 이 느낌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다 필요 없고 이 느낌만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일상생활할 때마다 목이 꽉 막힌 채로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회생활하는 거 너무 진절머리 나고 힘들어요.
답변)
안녕하세요. 이두형 정신과 원장 이두형입니다. ‘심지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느껴질 만큼의 힘든 마음을 안고서도 묵묵히 이어오신 시간들이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마음을 충분히 털어놓을 만한 여건이나 대상 역시 없으셨을 것 같고, 그만큼 마음이 더 막막하고 두려우셨을 것 같아 저 역시 마음이 아파옵니다.
지금 겪으시는 증상은 전형적으로 심한 불안과 우울 증상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몸에는 불안한 마음과 함께 작동하는 신경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불안 신경이 작동하면 숨이 가빠오고 막히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긴장되며 아프기도 합니다.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차 도망쳐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심지어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 차라리 죽어서라도 이러한 두려운 느낌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는지, 어떠한 과정이나 경험이 사연자분이 경험하시는 불안이 원인이 되는지를 짧은 사연만으로 모두 가늠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다만 지금 사연자분께서 심한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고 계시는 중이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대처로 ‘어떻게든 참고 잘 지내보기’란 방법을 택하셨음을 알 수는 있겠습니다.
우리는 힘든 마음을 ‘나 자신의 부족함, 잘못됨’과 연결 짓는 경향이 있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더 잘해보기, 잘 지내보기, 노력하기란 방법을 쓰곤 합니다. 나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돈을 더 많이 벌면, 몸이 더 건강해지면 힘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은 믿음이 그러한 마음 아래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고, 나의 불안과 슬픔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허함을 메우고 초조함을 진정시키려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만 같은 일, 세상과 타인이 좋다고 하는 일들에 매달릴수록 그러한 불안과 슬픔은 가중될 수도 있습니다. 무작정 참는다고, 무시하고 잘 지내는 척, 밝은 척한다고 해서 힘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쌓인 마음의 아픔은 오히려 더욱 큰 아픔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저는 사연자분께서 어떻게 이 힘든 마음을 없앨까, 라는 생각과 방법을 고민하시기에 앞서 우선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정상인지, 괜찮은지의 가치 판단은 조금 내려두시고, 내가 살아온 세월은 어땠는지, 나의 힘든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마음과 대화를 나눠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깊은 마음속에는 나도 미처 몰랐던 기억과 그때 홀로 힘들었던 나 자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만난 깊은 마음속 나를 안아주시고, 위로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지금의 나, 지금의 힘든 내 마음도 잘못된 것은 아님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진료를 받으시기 어려우시다면, 각 시군구에서 운영하는 보건소마다 정신건강 복지센터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마음에 대한 조언과 관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지금의 마음과 힘든 정도는 홀로 감내하기에는 막막하고 어려우신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전문적이고 따뜻한 도움을 함께 받으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틀린 마음, 잘못된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이해되기를 기다리는 마음만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시고 또 보듬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비록 타인은 충분히 이해해 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은 어느 누구보다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또 감싸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스스로의 마음에게 전하는 위로로 평안과 행복의 실마리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