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병원, 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병원 안, 환자들이 입원하여 있는 병동은 매일매일이 정말 숨 가쁘게 돌아갑니다. 우울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 갈등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파도처럼 출렁이기 일쑤인 정신건강의학과 입원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의 단면입니다. 그날도 병동의 치료진 선생님과 입원 환자분을 어떻게 치료하고 도와줄 수 있을지 대화를 주고받던 중이었습니다.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서로 마스크를 쓰고 눈을 마주 보고 여러 치료적 방법들을 의논하고 있던 찰나 저와 대화를 나누던 선생님이 깊은 한숨을 쉬며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말합니다.

“여사님, 저희가 의논 중인데 조금만 있다가 하시면 안 될까요?”

같이 돌아보니 청소 여사님이 간호사실 한켠에서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시는 중입니다. 치료진들이 토의하는 시간,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간 등은 당연히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인원이 각자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갑작스런 방송, 전화벨 소리, 어딘가를 긴급하게 수리하는 소리 등의 소음에 간헐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굉장히 흔합니다.

 

사진_freepik

 

그런데 저는 그 순간 부스럭거리는 분리수거 청소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과연 어떤 차이일까요? 그러고 보면 저 또한 병실에서 환자분과 심각한 내용의 면담을 하던 중 갑작스런 안내 방송 소리가 굉장히 거슬렸던 적이 있었던 게 떠오릅니다. 누구든 소음이 그날따라 거슬리고 힘든 날이 있는 것이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소음에 굉장히 민감하고 작은 소음에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청각과민증(미소포니아) 이라고 불리는 증후군이 있습니다. 원인은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청각과민증을 가진 사람들은 우울, 불안, 불면 등의 심리적 고통을 매우 크게 느낀다고 하는데요, 닭과 달걀처럼 무엇이 우선인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직감적으로 누군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우울하고 불안한 경우 소음에 굉장히 예민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실수로 뭔가를 만지다가 지지직하는 쇠 마찰음이 났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쇠붙이끼리 마주치는 소리는 정말 듣기 싫은 거 같아요. 왜 그래요?” 저는 무심결에 대답합니다. “응 그런 소리는 원래 거슬리는 법이야."

누구든 날카로운 쇳소리, 공사장에서의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들, 매끄럽지 않게 지직 거리며 나오는 방송소리 들은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예민하게 만드는데요, 우리의 대뇌는 그러한 저주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 하도록 세팅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원시시대에서는 포식자들의 울음소리 라던지,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 등 대부분의 저주파 소리들이 위험하고 당장 도망가야 하는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현대사회는 어느 정도 위험이 통제가 되는 까닭에 간간히 자동차 소리, 공사 소음이 들려오더라도 우리는 당장의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며 그 소리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사람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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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불쾌한 소음에 비교하면 고주파에 해당이 돼서 우리의 중이가 좀 더 수축해야 집중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요, 우리가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하다면, 최근의 여러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귀의 근육이 잘 조절되지 않아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힘들어지는 겁니다.

우울하고 불안해서 몸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태면 마치 사자와 호랑이가 숨어 있는 밀림에 있는 것처럼 ‘지금 들어야 할 소리는 새소리나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포식자들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라고!’하며 우리 뇌가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반대로 내 마음이 안정적이고 즐거운 상태라면 시끄러운 장소에서 상대가 아무리 속삭이면서 말하더라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사랑에 빠진 남녀를 들 수 있는데요, 여러분도 좋아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아무리 소음이 심해도 그 사람의 말만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경험을 해보셨을 터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상대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면, 내 몸이 최근에 너무 긴장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돌아봐야 할 때인지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소음이 많은 공간에서 벗어나 사람의 음색과 가장 비슷하다고 알려진 첼로 연주를 듣거나, 공원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내 몸과 귀에 휴식을 제공하여야 할 순간입니다.

 

저자_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움병원

저서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 siso, 2021.05.20.
브런치 @dr-rucoll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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