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내겐 나만의 속도가 필요해
어린이 날,
어떤 선물을 받아보았는가? 내가 어릴 적 어린이 날은 선물 받는 날이라는 것 정도로 기억했던 것 같다. 방정환 선생님이 깜짝 놀랄 일이다. 이제는 어린이날 선물을 줘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어린이 날이 되면 주책맞게 설레는 맘이 든다. 각종 학원을 빙빙 돌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잠이 들 만큼 바쁘고, 각종 어린이 범죄가 횡행하는 시대에, 어린이는 어른들을 어떻게 생각할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런 걱정도 모르고, 몰래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친구와 놀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어린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성장한다.
식물 또한 모두 다른 속도로 자란다. 다른 속도만큼 다른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홍콩야자에게 로즈마리의 속도로 물을 주면 과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로즈마리는 소문난물 돼지 이기 때문이다. 아디아텀이라는 고사리에게 왜 블루스타만큼 건조에 강하지 않냐고 물으면 아디아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볼 것이다. 블루스타가 건조에 강한 잎을 가진 것뿐, 대신 아디아텀은 야들하고 레이스 같은 모양의 매력이 있다.
물을 찾는 속도가 완전히 다른 식물들도 있다. 바로 다육식물*이다. 다육식물은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선인장부터, 흔치 않지만 어디서 본 듯한 유포르비아 종, 알로에 종류도 다육식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건조에 매우 강하기 때문에 물을 자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식물 내부에 물을 가득 채워놨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다른 식물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을 준다면? 매우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다. 처음에는 흐느적흐느적거리다가 몸체가 무르며 결국엔 물에 썩어 죽고 만다.
이들을 대할 때에는, 예쁘다고 물을 주고 싶은 손을 부여잡고, 꾹 참아야 한다. 대신 물이 마르면 보이는 신호가 있다. 대부분의 다육식물류는 마르면 화분이 공기처럼 가벼워진다. 그리고 몸체가 약간 쭈글 해진다. 이때가 물을 줘야 할 때이다. 밑으로 물이 살짝 새어 나올 정도로 물을 준다. 몇 시간 다른 일을 보다가 그들을 다시 돌아보면, 생기가 가득하게 주름진 부분이 펴지며 탱탱해져 있다.
평범하지 않은 어린이로 자랐던 나로서, 어린이 · 청소년의 마음건강은 요즘 내 최대 관심사이다. 그들이 너무 빠르지 않게 성장하기를, 그늘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내 욕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한다. 어린이도 각자의 속도가 있을 것이다. 식물처럼, 어린이들 각자에게 알맞은 속도가 있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이를 완벽히 맞추어 주기란 쉽지 않다. 다만 각자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줄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다육에게 성장이 느리다고 채찍질만 하면, 건조에 강하다는 장점을 돌아볼 시간은 없지 않은가.
카네이션 한 송이보다 작은 손을 가진 어린이들이, 각자에게 적절한 성장 도움을 받는다면 참 좋겠다. 무엇보다 마음건강을 꾸준히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지면 더욱 좋겠다. 어린이였던 내가 믿을 만한 어른에게 말하고 싶은 비밀이 많았던 것처럼, 어디에선가 감당하기 힘든 무게의 고민을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어린이가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하다.
다시는, 어디에서든, 감당하기 힘든 비밀의 무게를 짊어지고, 홀로 성장하는 아이가 없길 바란다. 식물이 그렇듯, 어린이가 그렇듯.
*다육식물(succulent plant) :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하여 잎이나 줄기, 혹은 뿌리에 물을 저장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식물들을 일컫는다. 다육식물은 내건성이 크다. 건조지의 것은 뿌리의 발달이 나쁘며 흡수력도 약하지만 저수 조직이 충분히 흡수하고 건조 시에는 기공이 폐쇄한다. 큐티클층이 잘 발달하여 큐티클 증산도 작기 때문에 몇 개월 또는 몇 년간의 건조에도 견딜 수 있다.
다육식물 [succulent plant, 多肉植物] (생명과학대사전, 초판 2008., 개정판 2014., 강영희)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