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26)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박 대리 팀에 신입사원이 새로 들어왔다. 앳된 외모의 곽당돌 씨는 다소곳한 태도로 팀 선배들로부터 호감을 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팀에서 적응하지 못해 부서 이동을 한 것이었다. 평소 마음이 따뜻하고 이해심 많기로 소문난 박 대리는 유독 새로 온 곽당돌 씨가 신경이 쓰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했을까. 내가 잘 적응하도록 도와줘야지.’
이후 박 대리는 곽당돌 씨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이것저것 챙겨주고 물어보지 않더라도 미리 친절하게 알려줬다. 얼핏 보면 동료라기보다 동생을 챙기는 누나나 조카를 대하는 이모 같았다.
“박 대리, 당신이 곽당돌 씨 엄마야? 왜 그렇게 싸고돌아?”
보다 못한 팀장이 박 대리를 불러 이렇게 핀잔을 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곽당돌 씨가 있었던 예전 팀의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박 대리님, 어떻게 곽당돌이랑 친할 수 있어요?”
“왜, 그러면 안 돼? 나는 괜찮던데?”
“조심하세요. 걔 보통 아니에요. 얕잡아 보이면 찰거머리처럼 엉겨 붙습니다.”
“그래? 내가 보기엔 그런 사람 같지 않던데……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야.”
그 뒤 박 대리는 곽당돌 씨를 유심히 지켜보며 대했지만, 예전 팀 직원 말에 걸맞은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잘 대해주고 챙겨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들이 들려왔다. 그중에는 박 대리의 가슴이 쿵 내려앉을 만큼 특별한 이야기도 있었다.
“곽당돌 씨가 몰라보게 변했대. 새로 옮겨간 팀에 잘 적응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박 대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를 만나서 그렇구나.’
박 대리는 자기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곽당돌 씨를 보며 보람과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뿌듯함은 잠시였다. 어느 순간부터 곽당돌 씨가 자기 업무의 대부분을 박 대리에게 부탁해 처리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걸 물어보는 척하면서 일을 아예 다 떠넘긴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을 해주던 박 대리는 문득 자신이 신입사원을 도와주는 인턴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날은 그의 일을 처리해주느라고 정작 자기 일을 끝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부하직원 한 사람 때문에 자네 앞길 망칠 셈이야? 왜 그렇게 쩔쩔매는 거야?”
급기야 팀장에게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오지랖을 자책하기도 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예전 팀 직원의 말이 맞았던 걸까?’
박 대리가 제일 화가 나는 건 곽당돌 씨의 태도였다. 내가 팀장에게 꾸지람을 듣고 동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 거였다. 그런 마음 자체가 없는 듯 보였다. 심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대충 살다가 의미 없이 죽음을 맞는 걸 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평가를 받든 최소한 내 주변 사람들 혹은 가족에게만이라도 가치 있는 인생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지나쳐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과대 포장함으로써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또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착각을 ‘구원 환상(Rescue Fantasy)’이라고 한다.
내가 노력하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더 애를 쓰기만 하면 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과신하는 것이다. 왜 이런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일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사람에게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발견된다. 그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편으로 열등감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필요 이상 도움을 주거나 열렬히 헌신해 평소 꿈꾸던 본인의 모습을 확인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자기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려는 것이다.
위 사연에서 박 대리는 곽당돌 씨에게 지나치게 잘해주다가 예전 팀 동료로부터 “어떻게 곽당돌이랑 친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박 대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내가 남들과 달리 이상한 건가?’, ‘내가 지금 위험한 일을 하는 건가?’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구원 환상이 있는 경우, 상대방 일을 정말 내 일처럼 생각한다. 심지어 내 일보다 상대방 일을 더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의 성공이 나의 성공인 것처럼 기쁘고,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처럼 즐겁다. 내가 그를 수렁에서 건져내 구원에 이르게 했다는 보람에 들뜬다. 이와 같은 구원 환상에 의한 행동은 상대방이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게 만든다. 비정상적인 이런 의존관계는 결국 병적인 관계를 만들기에 이른다.
모든 마음의 변화가 그렇듯 나의 마음을 인지하는 데서 변화는 시작된다.
‘과연 내 도움 없이 이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아도 나는 변함없이 기뻐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 마음을 확인해 보는 것이다.
직장 안에서의 관계뿐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 관계에서도 구원 환상을 볼 수 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내 도움 없이도 상대방이 행복할 수 있고, 내가 그걸로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도움이 없으면 상대방이 행복할 수 없고, 내 도움 없는 상대방의 행복에 내가 만족할 수 없다면 구원 환상에 빠진 것이다. 의도와 달리 내 과도한 행동이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을 망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잘못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성격상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는 사람이 있다.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해서 주변 사람을 늘 챙겨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구원 환상에 빠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친절과 배려도 상대방 요청이 있을 때 하는 게 좋다. 상대방은 원하지 않거나 도움이 필요 없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방이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언제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주기만 하면 된다.
“요즘 힘들지?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줘.”
이 정도가 적당하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면 있는 힘껏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 동료나 후배가 일을 너무 못해서 자신에게 방해가 되거나 자신의 업무에 지장이 있을 때,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을 도와주거나 거들어주는 것이다. 이럴 때도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나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서로 확실하게 해 두는 게 좋다.
구원 환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구원자 역할을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자신 또한 누군가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면 하는 환상을 갖기도 한다. 타인을 구원해줌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같은 욕망을 대신해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타인의 고통에 주목하며 그를 돌보느라 자신의 고통에는 신경을 못 쓸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배려하며 챙겨주고 도와주더라도 그전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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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