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사연) 

저는 조울증이 있는데요. 약이 잘 들어서 요새 3년간 감정기복이 없었어요. 화도 나지 않고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가족과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어요. 제 언행에 실망했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모조리 식으면서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이 우울한 것도 아니고 가슴이 아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고 목이 메었어요. 그리고 독극물을 먹고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밥 잘 먹고 운동 매일 하고 지인들과 대화도 잘하는데요. 이런 와중에 자살사고가 생겨서 당황스러워요.

발병 3년째인데, 회복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신호일까요.

 

사진_픽셀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삼성 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재옥입니다.

흔히 조울증이라고 부르는 양극성정동장애는 잘 아시는 것처럼 다양한 증상들이 합쳐져 있습니다.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이 많아지는 행동 관련 증상부터, 머리에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들끼리 연결고리가 잘 생기는 증상, 기분이 좋거나 우울해지거나 과민해지는 증상, 충동적인 모습, 수면 시간의 변화, 심한 경우 환청이나 망상까지 나타나기도 하죠.

 

문제는 이런 다양한 증상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잠시 마주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원하는 일을 할 때는 에너지가 넘치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일을 만나면 생각이 많아지며, 고백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친한 이들과 다투면 우울해지며, 반값 세일 앞에서는 충동적일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조울증을 진단받은 분들 대부분이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원래 모습일까 아니면 병이 다시 시작된 걸까?'

 

질문자분의 상황 역시 비슷한 듯합니다. 가족과 언성을 높여 다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식은 느낌이 든다면, 그 당시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잠시 들 수는 있죠. 그 사건 이후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계속 유지가 되었다면 고민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분이 이별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지, 조울증과는 별개로 충동적인 면이 있지는 않은지, 또는 조울증의 증상이 다시 발현된 것이 아닌지 등입니다.

이 중 질문자분이 걱정하는 것은 마지막 고민인 듯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대로 조울증은 다양한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자살사고와 함께 에너지, 활동, 기분 같은 부분들이 다 문제가 있다면 조울증이 재발한 것이겠죠. 하지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른 것은 모두 괜찮기에 조울증이 재발했다고 여기실 필요는 없는 듯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조울증의 회복에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별에 대한 취약성이나 충동성 등을 검토해 보셔야 할 듯합니다. 조울증이란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조울증이라는 틀 안에 가둬버리기 쉽습니다.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감정변화도 조울증이라고 규정해버린다면 자신은 평생 아픈 사람이기에 자존감이 낮아지게 됩니다. 낮아진 자존감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더 쉽게 받게 만들고, 결국 스트레스에 취약해져 조울증을 재발시키게 하죠.

 

정리하면, 질문자분 스스로를 조울증 환자로 규정하지 마시고, 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규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삶의 모든 부분을 조울증으로 설명하는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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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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