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얼마 전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 인근 도로에서 20대 여성 한 명이 시내버스에 깔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신고를 받은 구조대원들이 출동했으나 이 여성은 이미 현장에서 숨진 상태였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린 여성이 입고 있던 옷자락 끝이 뒷문에 끼었는데, 기사가 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출발하는 바람에 넘어진 채 20미터 이상 끌려가다 뒷바퀴에 깔려 참변을 당한 것이다. 당시 시간이 오후 8시 30분 경이라 어둡기는 했지만, 기사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함으로써 일어난 가슴 아픈 사고였다. 해당 버스 뒷문에는 승객의 하차를 확인할 수 있는 감지기가 있었으나 얇은 옷자락이 끼는 바람에 사고를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운전기사를 입건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애처롭고 딱한 사연에 깊은 슬픔을 표시했다.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과 트럭, 버스, 택시 등 기사들의 난폭운전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버스 기사의 난폭운전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원을 올린 사람은 “급출발하지 않기, 정차 후 하차, 하차한 승객 확인 후 출발. 이 세 가지 버스 문화를 정착시켜 더 이상 안타까운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버스 기사들의 난폭운전을 법으로 제재하고 이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고자 청원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대다수 시민이 이에 공감하는 건 이 같은 사고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에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10대 여학생이 역시 버스 뒷문에 옷이 끼는 바람에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2015년에도 서울시 강남구에서 남자 중학생이 버스 앞문에 발이 낀 채 40미터가량을 끌려가다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뉴스를 접하면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약칭 중대재해법)’이 떠올랐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고 있는 법이다. 여기서 중대재해는 ‘중대 산업재해’와 ‘중대 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 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인 재해 등을 말하고, 중대 시민재해는 재해가 공중 이용시설과 공중 교통수단 등의 관리 부실로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책임자 11명이 검찰에 넘겨졌지만, 원·하청 대표이사들은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이 일로 산재 사고를 막으려면 경영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법률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예외 규정이 있어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법으로 중대재해를 저지른 사람들을 단죄하게 됐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중대재해가 벌어질 때마다 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이에 따라 처벌에 방점을 둔 법률과 제도가 마련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이며, 제대로 된 처방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규정된 안전지침을 지키지 않아 사고를 유발한 책임자에 대해서는 분명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건, 사고에 대해 명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재발 방지와 예방이 가능하다.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정신건강과 관련되어 있다. 사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나 사건, 사고를 당한 사람 모두 정신건강에 관한 주기적인 점검과 진단 속에 건강하고 편안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을 상당 부분 막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둔하거나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안전 불감증(safety frigidity)도 마찬가지다. 안전과 관련된 규정 등을 무시하다가 최소화할 수 있었던 재난을 크게 키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참사가 터질 때마다 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타성에 젖는 것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대처가 미흡한 까닭이다. 질병은 소수에게 고통을 주지만, 안전 불감증은 한 번의 실수로 수많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제시카 쿠보 교수와 벤저민 골드스타인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1997년 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근로자 37,9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우울증이 직업상 입게 되는 급성 상해(acute occupational injury)의 위험을 1.25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혈압, 당뇨, 천식 등 다른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보다 더 높은 수치다.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재해와 정신건강 사이에 높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경미한 우울증조차도 주의력과 경계심이 줄어들고, 주의력과 경계심이 지속되는 시간이 감소하며, 감각이나 감정이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과민성이 증가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법률과 제도만으로 모든 사건, 사고를 방지하거나 예방할 수는 없다. 산업 현장에 있는 사람은 물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두가 자신의 정신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밝히는 것 역시 매우 조심스럽다. 사회에서 또다시 우울증에 대한 편견이 높아지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직장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고용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올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종 정신건강의 유병률은 전 인구의 25% 수준에 이른다.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의 건강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도 정신건강 분야다. 이미 근골격계질환을 넘어섰다. 이런 문제들은 덮어둘수록 나중에 더 크게 튀어 오른다.
국민 모두가 정신이 건강해야 이와 같은 안전사고와 중대재해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을 잘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
우선 모든 근로자들에게 신체적 건강검진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검진도 시행해야 한다. 일정 규모의 직장이라면 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건강검진을 받게 한다. 직원의 건강이 곧 회사의 건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건강검진은 몸에 이상이 없는지를 검사하는 데 그친다. 내 정신에, 내 마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상처가 있는지, 어떤 치유가 필요한지는 검사하지 않는다. 몸만 건강하면 회사 다니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 뚜렷한 이유 없이 결근을 하거나 출근을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상태일 경우(absenteeism)가 더 많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다 함께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가정도 회사도 사회도 국가도 건강해진다.
이를 위해 모든 근로자들이 자신과 주변 사람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정신건강에 관한 문해도(literacy)를 높이면 좋겠다. 정신건강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강의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정신건강과 관련된 다양하고 유익한 자료를 언제든 접할 수 있도록 배포하는 일도 중요하다. 국민의 정신건강 향상, 길은 있지만, 지름길은 없는 셈이다. 정석대로 차근차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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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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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