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정정엽 전문의]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다. 생후 7개월 무렵이던 지난해 1월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9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13일 응급실에서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국립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정인이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밝혀졌다. 병원에 실려 왔을 당시 정인이는 비쩍 마른 상태로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머리뼈가 깨져 있었다고 한다. 소장과 대장, 췌장 등 장기들이 손상돼 있었으며, 양쪽 팔과 쇄골, 다리 등에서 부러진 시기가 다른 골절도 발견됐다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정인이를 만났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이 정도면 명백한 아동 학대라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정인이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세 차례나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정인이의 양모인 장 씨는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양부는 사망 당일 상황이나 학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장 씨를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양부는 학대를 방임한 혐의로 불구속기소했으나, 거센 국민적 공분이 일자 장 씨에게 살인 혐의를 추가 적용하겠다며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허가했다. 이후 세상을 떠난 정인이를 애도하고 관련자 엄벌을 촉구하는 해시태그 캠페인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펼쳐지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빈번히 벌어지곤 했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는다. 아이를 죽도록 학대할 거면 왜 입양을 했을까?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를 입양할 정도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악마 같은 짓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서, 즉 친부모가 아니라서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자식에 대한 친부모의 학대는 없을까? 친부모나 양부모를 떠나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들의 정신 상태와 심리는 과연 정상적일까?
자기가 낳은 자식이든 입양한 아이든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어린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어렸을 때 본인 역시 학대와 폭력을 당하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폭력은 대물림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며 확대 재생산된다. 장기간 폭력과 학대에 노출되다 보면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길들여진다. 폭력적인 부모에게 수시로 매를 맞으면서 자란 아이는 그것이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루라도 맞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 있다면 그런 날이 오히려 이상한 날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욕하고 윽박지르고 눈을 부라리고 손찌검을 하고 매를 드는 것이 행해서는 안 되는 폭력이라는 인식이 없어진다. 이러한 폭력이 부모라면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인식하게 되고, 이러한 폭력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의 일종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잘못했다는 마음은 점차 사라져 버리고 소통하는 정당한 방식이라고 이해하기에 이르러서는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부모의 학대와 폭력이 부당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인식한 아이가 있다면, 그래서 이런 상황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집을 나오는 것, 즉 가출하는 것이다. 도망 혹은 탈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는 아예 불가능하다. 중고등학생 정도 나이가 됐다고 해도 가출하는 순간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경제력이 전혀 없는 아이가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돌봄 센터나 쉼터 같은 기관이 있지는 하지만, 자칫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질 위험이 농후하다.
다른 하나는 부모의 학대와 폭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힘으로 맞서든지 제도를 이용하든지 말이나 논리로 맞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과연 가능할까?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힘으로 맞서기는 어렵다. 아직도 가정폭력을 부모의 훈육이나 남의 집안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법과 제도에 호소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 부모에게 말이나 논리로 맞선다는 건 더 매를 부르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학대와 폭력을 참고 사는 것, 길들여지는 것, 그러려니 하면서 포기하고 사는 것, 이것밖에 없는 셈이다.
부모의 학대와 폭력 속에 성장한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경우, 어떤 성향을 보일까? 어떤 부모가 될까? 이 역시 두 가지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 하나는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자신이 길들여졌던 것처럼 자식에게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며 학대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다른 하나는 나는 절대로 부모처럼 아이를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 그런 부당하고 비정상적인 어른이 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악습의 고리를 당대에서 끊어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람직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숨겨진 내면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게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노력은 하지만, 심리 저변에는 어릴 때 당했던 학대와 폭력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본인을 괴롭히거나 언제든 타인을 향해 폭발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다.
반면 숱한 갈등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악습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낸 사람도 있다. 자식은 물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건강한 부모와 어른이 된 것이다.
아동 학대(Child Abuse)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해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동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흉악 범죄다.
법률이 보강되고 처벌이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에서 매년 발표하는 아동 학대 발생 수치는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아동 학대가 발생하는 장소가 어린이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어야 할 가정이라는 점이며, 아동 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라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2018년 통계에 따르면 가정에서 행해지는 아동 학대가 전체의 80% 이상이며, 아동 학대 가해자 중 부모가 76.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친부모가 95% 이상이었다.
아동 발달 및 가족 관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미국 텍사스대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는 체벌할 경우 어린이가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며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체벌을 당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정신질환을 앓게 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2016년 동료들과 함께 50년 동안의 연구 결과 등을 메타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체벌 효과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결과는 일관되게 부정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친부모냐 양부모냐, 내가 낳은 자식이냐 입양한 아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학대와 폭력이 문제다.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자신이 아동 학대와 폭력에 길들여져 있다면 전문의의 도움을 통해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자신의 유년기를 깊이 통찰하면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학대와 폭력의 대물림을 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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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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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