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시간으로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에 7곳에 달하는 다발 총격·폭발 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지난 1월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파리 도심에서 발생한 대형 테러로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파리 경찰 관계자가 ‘대량 학살’이라고까지 표현했고,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전대미문의 테러 공격’이라고 규탄할 정도로 현장은 참혹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교육부는 테러 사건 이튿날인 14일, 파리 지역 모든 학교를 임시 폐쇄하고 대통령 또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예정되어 있던 G20 회의 참석을 취소하였다.
이렇게 참혹한 재난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은 것만으로 안도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가 없다. 그들 중에서는 어딘가를 다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 좋게 몸이 멀쩡하더라도 테러 장소에서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사고 장소에 있진 않았지만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의 고통도 말할 것도 없다. 그 고통은 자신이 피격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테러와 같은 대규모의 재난은 위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2013년에 개정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5)에서는 정신적인 외상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외상성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2. 그 사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것을 생생하게 목격함
3. 외상성 사건이 가족, 가까운 친척, 또는 친한 친구에게 일어난 것을 알게 됨.
4. 외상성 사건의 혐오스러운 세부 사항에 대한 반복적이거나 지나친 노출의 경험
여기 해당할 경우 모두 정신적 외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한 장소에서 벌어진 재난이 전국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이런 부분에서 매스컴의 역할이 중요한데, 사고에 대한 정보를 주되, 반복해서 희생자들과 그 생존자들을 방송에 노출시키거나 그들을 반복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매스컴에서 사고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도할 경우 생존자들이 2차적인 정신적 외상을 입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사고와 연관이 없던 사람들까지 간접경험을 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벌어진 911테러에서, 테러 소식을 접한 것만으로도 불안과 불면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세월호 사고에 충격을 받아 원래 갖고 있던 정신질환이 악화되어 응급실로 오거나 입원을 하게 된 환자들도 있었다. 앞의 예들은 엄밀히 말해서는 정신적 외상을 받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간접적인 경험으로도 충분히 정신건강에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재난이 벌어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정신과 질환은 아래와 같다.
1.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2. 급성 스트레스 장애
3. 주요 우울 장애
4. 물질 사용 장애
5. 범불안장애
6. 적응장애
7. 두부 외상 이후 이차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정신질환
꼭 정신과 질환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면 흡연이 늘어나고, 음주가 늘어나고, 과하게 봉사활동을 한다던가 피난을 가는 ‘재난 행동(disaster behavior)’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재난 이후의 심리적으로 격정적인 반응들이 모두 병적인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의 진단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대개의 반응들은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당하다.
불안, 불면, 슬픔, 과민성 같은 문제들이 대개는 일시적으로만 문제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실의에 빠지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증상들은 장기적인 기능저하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래서 재난이 일어난 직후인 급성기에는 정신건강의 전문가들이 마음의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나아진다는 확신을 주려 노력한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신체의 외상을 치료하느라, 그리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처리하느라 정신건강의 문제는 두드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사고가 난 후 1개월 정도부터를 아급성기로 분류한다. 이 때 부터는 정신 질환으로 진단이 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마음의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때는 각 질환에 맞는 치료가 필요하다. 인지행동치료, 분석적 정신치료, EMDR 등 여러 가지 정신치료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약물치료도 병행이 가능하다.
사고 후 3개월이 지나서도 마음의 문제를 여전히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시기는 만성기로 분류되는데, 사고와 관련한 법적인 문제가 뒤따르고, 주위 사람들도 점차 환자의 증상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이미 마음의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겹치게 되면 평소의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여유가 점점 사라지므로, 재난 후 시기별로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져야 증상의 장기화를 막을 수 있다.
세계는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큰 비극을 겪었다. 사고로 떠난 이들을 기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와 더불어 남겨진 이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참고자료>
1.Stoddard, Frederick J., Anand A. Pandya, and Craig L. Katz, eds. Disaster psychiatry: Readiness, evaluation, and treatment. American Psychiatric Pub, 2011.
2.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American Psychiatric Pub,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