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관계와 경쟁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BS 화면 캡처

알에서 먼저 깨어난 검독수리의 새끼는 둥지에 남아 있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알을 부리로 쪼아 깨트려버린다. 본능적인 형제살해(siblicide)이다. 푸른발부비새라고 불리는 녀석들은 먼저 태어나 조금 더 큰 몸집을 가진 새끼가 작은 동생들을 쪼아 죽이거나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또, 점박이 하이에나 새끼들의 경우엔 1/4 가량이 형제들 간의 다툼으로 죽고 만다고 한다. 반면 어떤 늑대들은 먼저 태어난 새끼 늑대들이 몸집이 작은 새끼들을 보호하고 먹이를 챙겨주는 등 오히려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하기도 한다. 부모 이외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자라는 ‘형제’는, ‘자매’는, 서로에게 일생일대의 위기인 동시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90대 중반을 향하는 신격호 회장의 병석이 길어지며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매일 극본을 갈아치우며 드라마를 써내고 있다. 신동빈 회장 단독체제로 굳어가는 듯 했던 롯데의 가업(?)승계가 일본 신동주 전부회장과의 다툼으로 해임과 난입, 협박을 반복하며 엎치락 뒤치락하는 가운데, 롯데 홀딩스와 광윤사, 그리고 의문의 L투자회사까지 오랫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롯데가의 난해한 출자 구조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절대권력 신격호 명예회장과의 관계 아래에서 복잡하게 얽혀 법적 소송과 공권력의 개입까지 불사하겠다는 다툼을 보고 있노라면 둘 사이엔 단순한 기업 경영권의 다툼 이상의 깊은 골이 엿보이는 듯 하기도 하다.

사실 형제간의 이러한 갈등은 역사 속에서도 수없이 되풀이 되어왔다. 짙은 피비린내가 나는 형제간의 살육전에서부터 아연할 반전의 드라마를 그려낸 배신 스토리까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역사적 사건들 중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을 듯 하다. 물론, 그것들을 그저 부친의 권력, 명예, 돈을 함께 나눠 상속 받아야하는 입장에서의 경쟁자로서 일어난 단순한 정쟁이나 사기극 정도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형제관계라는 것은 그들이 다만 형제라는 것만으로도 다른 인간관계와는 다른 복잡한 역동이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작용하고 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상속 받아야할 물질적인 어떤 것일 뿐만이 아니라 깊은 무의식에서부터 인격에 이르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 형제 자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장기간의 관찰 연구로 저명한 Judy Dunn의 연구에 따르면 생후 1년 후부터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이 본인과 다른 사람들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지각하며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18개월이면 가족 간의 규칙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고, 3세만 되어도 형제자매와의 관계를 통해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며 이에 따라 가족 관계에 적응하게 된다고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아온 형제는, 인격의 뿌리가 자라나는 시기부터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요인격 형성시기(critical period)에 작용하는 형제간 역동의 핵심에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공유하며 ‘경쟁’한다는 점이 가장 큰 맥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형제간 경쟁이라는 개념의 'sibling rivalry'라는 단어는 소아정신과 의사인 David Levy에 의해 도입되어, 먼저 태어난 아이가 동생에게 보이는 공격적인 반응이나 적개심이 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개념임이 확인되며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본인에게 집중되던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다른 대상에게 옮겨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방어로 다시 본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으로 시작되는 형제관계. Sibling rivalry는 '부모의 관심'으로 대변되는 '생존과 안전의 유지'라는 이슈에 대한 경쟁상대로서의 형제를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형-동생’이라는 부모-자식 관계만큼이나 복잡한 역동의 물꼬를 트게 되는 것이다.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라 일컫는 갈등으로 이어지는 정신역동의 흐름 말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격형성의 중요한 고비 가운데 하나는 부모-자식간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한참 길어질 테지만, 요약하자면 남자아이는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에 대한 경쟁심과 적개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힘 앞에 좌절되는 본인의 경쟁심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와 본인의 동일시(Identification)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성숙한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빗대 형제자매 사이에서의 관계를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라 명명한 갈등을 통해 설명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동일시’와는 반대로, 아이들은 Sibling rivalry를 극복하기 위해 ‘비동일시(deidentification)’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경쟁하는 상대방과 다른 형태의 인격을 형성함으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더 사랑 받는 형이나 동생과의 과열된 경쟁은 아이에게 내적인 갈등과 적개심, 공포감을 쌓게 하지만, 비동일시 과정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나만의 특성을-형제에게는 없는 나의 정체성을 갖춤으로써 카인 콤플렉스는 극복되고 해결된다.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매우 유사한 형제 사이-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라도 상이한 성격으로 성장하게 되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건강하게 극복된 유년기의 갈등(complex)은 인격 형성의 중요한 시기에 자기감과 성취감, 안정감을 제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갈등은 무의식속에 억압되며 인격의 뿌리에 잠들게 된다. 무의식 속 어린아이의 해결되지 못한 불만은 어른이 되어서도 스트레스나 어려움에 대응하는 순간마다 그 모습을 드러내며 주체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갈등에 얽메이게 한다. 윗사람-상사와 관계에서의 갈등에서 드러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그렇듯, 카인 콤플렉스는 사회생활에서 형제 관계와 유사한 동료-경쟁 관계로 전치된다. 우리는 형제 관계를 통해 동료 경쟁 관계에서의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내재화(internalization) 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가치와 정체성의 확립은 주로 내적 성찰을 통해서 보다는 대부분 외적 관계에서 느껴지는 자기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앞서 언급하였듯, 아이들은 만 3세가 되기 전에 이미 형제자매와의 관계를 통해 본인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에 따른 적응 전략을 세우게 된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자기감의 확립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녀들 각자의 정체성은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어린 시절에서부터 그들의 형제와 함께 쌓아온 탑이다. 그렇게 형제가 쌓아준 탑에 올라 나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며 사회의 차가운 경쟁관계에 맞설 전략을 다듬는다.

카인은 아벨을 죽였고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지금 롯데의 신동주, 신동빈 두 연년생 형제의 다툼 사이에 오고가는 돈이나 권력의 규모에 대해서는 쉽사리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다만 갈수록 불거지는 둘 사이의 갈등의 장기화가 점점 롯데가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뿐 만 아니라, 이 시대의 해결되지 못한 카인 콤플렉스를 부끄럽게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지 염려될 따름이다. 중고등학생에서 취업생, 직장인까지 점점 더 경쟁만을 요구하고, 그렇게 과열된 경쟁에 진정한 정체성과 가치관은 뒷전으로 미뤄지기만 하는 양태가 더욱 만연해가기만 하는 작금에, 매일 지면에 오르내리는 두 재벌 형제의 갈등이 국민들에게 보다 성숙한 의식의 모범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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