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게임 유저가 ‘한달연봉2억 vs 무기징역3년 어떤게 더 낳나요?’ 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한 때 큰 웃음을 줬었다.

연봉, 무기징역의 개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맞춤법까지 완벽하게 다 틀렸기 때문이다.

진지한 질문자의 태도는 덤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질문을 했을까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답을 찾은 듯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완벽하게 틀린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약사회와 보건복지부가 이 문장을 완벽히 재현했다.

 

‘약사에게 자살예방 상담 받으세요!’

 

이 문장을 보고 각자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생각하면서, 아래 글을 읽는다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먼저, 자살에 대한 개념이 틀렸으며, 특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이 시범사업의 명칭은 ‘약국을 활용한 빈곤계층 중심 노인 자살예방사업’이다. 즉, 빈곤계층 노인 중 자살 우려가 있는 사람 중 약국을 방문한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한국 노인의 자살방법은 목맴 49.5%, 일산화탄소중독(연탄, 번개탄) 16.3%, 농약중독 7.1%, 익사 4.0%, 약물 1.6% 순서이다. (2017년 한국자살예방협회)

즉, 약국에서 구입한 약으로 자살 시도하는 노인은 전체의 1.6%인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도구를 구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끈이나 번개탄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슈퍼마켓이나 농약을 구입할 수 있는 농약사에서 자살예방 상담을 해야 한다.

빈곤계층 노인이 약을 구입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으며, 실제로는 대다수의 빈곤계층 노인은 우울증이 있어도 진단받지 못했고, 진단을 받더라도 치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공식적으로 자살예방을 담당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노인들에게 우울증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교육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_픽셀

 

또 자살예방을 위험이 있는 개인의 자살 시도를 막으면 되는 일로만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자살은 사회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특히 노인은 경제적, 정신과 신체 질병의 영향도 강하게 받는다.

이혼한 상태, 사회적 관계가 없는 노인이 자살 위험이 높으며, 빈곤계층,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자살 위험이 높다.

이런 증명된 위험 요인을 보완해 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개인의 자살 시도만을 막기 위한 사업을 시행한 것이다.

이는 과거 마포대교를 ‘생명의 다리’로 만든 뒤, 오히려 마포대교가 자살의 명소가 된 잘못을 다시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약사에게 상담 받으세요.

먼저 자살은 응급 상황이다. 이런 응급 상황을 다루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사 등은 자살에 대한 교육을 모두 받고, 실습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며, 실전에서는 서로 조언을 받으며 적용한다. 그만큼 어렵고, 잘못했을 경우 상담자와 상담을 받는 사람 모두 큰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사는 환자의 증상에 대한 상담을 배우지 않는다. 하물며 자살에 대한 어떤 정규 교육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상담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을 처벌하기 까다로운 이유는, 공무원도, 전문가도 아닌 민간인이 국정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도 약사는 의료인도, 임상심리사도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약사가 환자와 상담하는 것 자체가 의료법상 불법이다.

 

 

셋째, 약사가 자살예방을 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국가가 시행하는 사업은 그 사업이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사가 상담을 하고 난 뒤, 자살이 얼마나 예방됐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자살위험이 높은 노인은 약사의 도움으로 지역자살예방센터에 연계됐다고 하자. 그리고 자살예방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노인이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가 약사 때문일까. 아니면 자살예방센터에서 관리한 덕분일까.

또, 연계가 됐으나 자살을 했다면 이것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또, 약사가 상담을 권유하지 않은 사람이 자살했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살의 원인은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신과 신체의 질병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예방을 위해서는 적어도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한다.

노인의 경제적 위기를 지원하는 복지정책, 독거노인에 대한 자원봉사, 정신과 신체의 질병의 치료를 위한 의료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기관, 이 모두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누구 때문에 자살예방이 성공 혹은 실패했다는 것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약사가 자살예방에 개입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곳에 들어갈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며, 예방체계 자체에도 혼선이 온다.

 

그러면 도대체 왜 약사가 자살예방사업을 하려는 것일까?

 

사진_픽사베이

 

의사가 왓슨을 두려워하듯, 약사도 로봇 약사, 즉 약국 자동화 시스템을 두려워한다.

이미 유럽 및 북미지역에서는 약사를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의사의 전자처방이 증가하면서, 자동조제 및 포장, 라벨 부착이 가능한 약국 자동화 시스템이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이유는, 약사의 처방 착오로 인한 사망 사례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약품 재고 관리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약회사들이 약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약 자체의 가격이 비싸진 것도 영향을 준다.

정부에서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약 자체의 가격을 낮추기는 어렵지만, 자동화 시스템으로 조제비를 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약국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 약사는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점점 다가오는 로봇조제... 약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 약사공론 http://www.kpanews.co.kr/article/show.asp?idx=185180&table=article&category=H )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약사는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 첫 단추로 약대를 6년제로 바꿔 언제든지 의사처럼 진료를 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으며, 편의점 내 상비약 비치를 반대했고, 원격진료 장비를 약국에 설치하려고 하며, 화상투약기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제, 그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한 적 없는 자살 위험 노인을 상담하는 약사가 되려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약사는 상담 1회당 7천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 상담의 방법도, 시간 기준도, 상담의 효과도, 상담의 자격도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사진_픽셀

 

십여 년 전, 의약분업 당시 약사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를 외치며 의약분업을 지지했다.

약사는 의약분업이 의료비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분업은 성공했고, 감기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만큼의 돈이, 감기약을 보관하고 포장하고 하루 세 번 먹으라고 말하는데 지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도 그렇다. 그리고 당연히 의료비는 증가했다.

국가적, 개인적 재앙인 자살마저도 이익집단의 논리로 다루는 약사회의 능력과, 보건복지부의 무능력은 각각이 악마의 재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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