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조현병학회 이헌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질환들은 병의 증상이 마음의 문제로 드러나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되어 왔었습니다.

조현병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마음의 병이라고만 여겨졌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고 병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여러 병인에 관한 이론들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양육과정이나 가족관계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유전적, 생물학적 취약성이 발병 원인으로 중요하다는 알려지고 있으며, 또한 조현병이 뇌의 병이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심리적, 환경적 요인이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 아니며, 타고난 생물학적인 취약성이 발병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타고난 생물학적 취약성이 있는 경우에 환경적 스트레스가 영향을 주어서 조현병이 발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회 환경적인 요인도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파민 조절 이상

그간의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조현병의 생물학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과잉이 망상과 환청의 병리기전에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증거로는 조현병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항정신병 약물이 뇌에서 도파민의 활성을 낮추는 약리작용을 가진다는 점과, 뇌에서 도파민이 과도해지면 피해망상과 환청 등의 정신병적 증상이 야기되며 조현병의 증상이 심해진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도파민 과잉상태가 되면 조현병이 발생한다는 ‘도파민 가설’이 세워졌습니다.

최근에는 좀 더 연구가 진행되면서 조현병 환자에서 뇌의 부위별로 도파민 활성이 달라진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환자에서 뇌의 앞쪽 전두엽은 도파민 활성이 오히려 저하되고, 뇌의 안쪽 변연계에는 도파민 활성이 증가된다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전두엽에 도파민 활성이 감소하기 때문에 대인관계 어려움, 의욕 저하, 집중력 저하와 같은 이른바 음성증상이 발생하고, 변연계 도파민 활성의 증가 때문에 환청, 망상과 같은 양성증성이 나타난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파민 이외에도 뇌에서의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글루타민과 같은 다양한 물질의 불균형도 조현병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현병은 유전병인가?

조현병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간혹 듣는 질문이 ‘조현병이 유전병인가요?’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아니다'입니다.

부모가 조현병이라고 해서 자녀의 다수에서 조현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쪽 부모가 조현병을 앓을 경우 자녀에서도 조현병이 발병할 확률은 12%로 일반 사람보다 12배가 높긴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식을 10명 낳을 경우 1명에서 조현병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고, 일반 인구에서도 조현병의 발병이 100명 중 1명꼴로 흔하기 때문에 유전병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조현병이 유전병은 아니지만, 조현병의 발병에 유전 경향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조현병의 발생률은 조현병의 가족에서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형제는 8%의 발병률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일반 인구의 1%의 유병률에 비하여 높은 것입니다.

환자와 혈연관계가 멀어질수록 그 발생은 감소합니다. 과거 조현병 쌍둥이 연구들을 종합하면 약 50%의 일란성쌍둥이에서 둘 다 조현병이 발병하였고, 이란성쌍둥이에서는 15%에서 같이 발병하였습니다.

여기서 조현병의 발병 원인 중 유전적 요인이 약 70%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_구글

하지만 단순히 조현병 환자의 가족에서 조현병의 발생이 높다는 소견만으로, 환경적 요인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분리해 평가할 수 있는 연구방법이 입양 연구입니다.

한 입양 연구에 따르면 입양 후 조현병이 발병한 환자의 생물학적 가족(입양 전 가족)을 조사하니 21%가 조현병이나 조현병 관련 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는 일반인에 비하여 높은 수치입니다.

또한 조현병 부모에 태어나서 정상 부모에게로 입양된 경우에도 여전히 조현병 및 관련 장애가 32%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정상 부모에서 태어나 조현병 부모에게 길러졌다 하여도 조현병이 될 위험도가 증가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조현병의 원인에 있어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생물학적인 유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유전자가 100% 일치하는 일란성쌍둥이의 경우도 한쪽이 조현병인 경우 나머지도 조현병일 경우가 50%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유전자 이외의 성장 환경, 개인 경험, 교육 등의 다른 요인의 영향도 그 못지않게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조현병의 원인 유전자를 밝히려는 연구는 다양한 최신 유전 연구 기법(전장유전체연합연구 등)에 의하여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원인 유전자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몇 유전자들이 조현병 발생에 기여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유전자가 단독으로 조현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유전자들의 같이 발병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환경적인 요인 역시 관여하여 조현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조현병이라는 병이 동일한 원인과 병리기전을 갖는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는 조현병과 비슷하게 일반 인구에서 흔히 발생하는 다른 신체질환들은 전장유전체연합연구 등의 최신 연구기법에 의하여 원인 유전자들이 상당 부분 밝혀지고 있으나, 조현병을 위시한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에서는 뚜렷한 원인 유전자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드러나는 증상만으로 진단하는 것에서 생물학적인 기전이 관여된 진단체계로 바뀌어야만, 원인 유전자를 규명하는 연구에서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한조현병학회 <조현병, 마음의 줄을 고르다>에서 발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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