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민성길

 

정신의학신문이 최신정신의학의 대표 저자 민성길 선생님을 만났다.

 

* ‘최신정신의학’은 조현병, 우울증 등 각각의 정신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의 개념과 역사, 인간행동에 대한 생물학적·정신사회적 이론, 정신의학의 사회적 의미, 정신병리학, 생애주기와 정신의학, 정신의학과 법, 윤리, 소아·청소년, 노인 관련 정신의학, 응급 및 재난 관련 정신의학, 정신신체의학과 자문조정 정신의학 등 정신의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총 망라하고 있는 책이다. 전국의 많은 의과대학생들이 정신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보는 필수 교과서이며, 필자 역시 학생 때부터 보기 시작하여 아직도 기본적인 개념을 다시금 떠 올릴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책이다. 말턴(인턴의 막바지를 말한다) 무렵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자기 전에 하루 한 챕터씩 읽어야만 했던 공포의 책이기도 하다. 작년 3월 제6개정판이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수련을 받은 1세대 정신과 의사, 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보는 한글 교과서의 대표 저자라는 직함 때문에 어렵게만 생각되었는데, 가장 먼저 정신의학신문을 반겨 주셨고, 편하게 맞이해주셨다. 또한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1. 선생님께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목사 아들로 장남은 목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너무 잘하는 바람에 의과 대학에 갈 수 있었다.(웃음) 의사가 되고 보니 정신과 의사가 목사와 가장 가까운 직업 같았다. 아버지의 권유를 져버린 죄책감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목사의 아들로서 바른 이야기만 듣다가 타인들의 사연과 비밀을 듣는, 약간은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마음속 욕구를 충족 시켜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2.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신 후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의사 생활을 하셨는지요?

정신건강질환을 이겨낸 사람들은 자신들을 ‘다시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환자를 대할 때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진료를 했다. 사실 무엇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했다. 인간 무의식, 핵심 감정을 알아내는 과정,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살아가는지, 뇌의 신비, 약물이 정신에 작용하는 기전, 정신의학에 관련된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사는 것이 만족스럽고 즐거웠다.

 

3.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이 되셔서 하신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모든 정신건강의학과 환자, 가족들, 의사들 모두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약을 탈 수 있게끔, 의약분업에서 예외로 하는데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시키는 일을 했다. 이충경, 박정수, 백상창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당시 국회의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정치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면 가르쳐주겠다.(웃음) 또 생각나는 일은, 당시 대형 의대 부속병원과 개업의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느끼고 ‘무임소 이사’직을 만들었다. ‘무임소 이사’직은 여성의와 개원의를 대변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당시 IMF사태로 적자를 우려했는데, 그래도 많은 회원들이 도우셔서 오히려 학회기금을 불릴 수 있었다.

 

4. 전국의 많은 의대생이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최신정신의학 교과서를 보고 공부를 하는데, 어떻게 책을 집필하시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내가 배울 당시에는 Noyes 원서를 보고 공부했다. 당시 국민 소득이 200불인데, 책 한권이 200불이었다. 웬만큼 잘 사는 집이 아니고는 책을 사기도 힘들었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웃음), 교수로서 내가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연세대는 학생들에게 항상 학교와 병원에 대한 자부심을 가르친다. 그 중 하나가 최초의 한글판 해부학 교과서 등 교과서 발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욕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5. 선생님께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실 당시 정신건강의학과의 사회적 위상이나 실태가 어떠했는지, 현재는 어떠하며, 앞으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시 신경과-정신과가 통합되어 있어서 병원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세대는 수입 면에서도 소아과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과가 분리되면서 점차 정신과가 뒷방으로 밀려나는 분위기가 되었다. 현재도 사회적으로는 위상이 높지만 병원 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경제적인 면이 많이 작용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신과라는 스티그마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정신의학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 정신의학신문이 앞으로 좋은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6. 정신건강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해 주시고 싶은 말씀은요?

환자분들은 정신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도움이 필요함에도 스티그마로 피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은 환자를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다그치지 말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를,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기를 그리고 그 조언을 충실히 따르기를 바란다.

 

7. 후학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역시 공부, 공부, 공부다. 그런데 조금 다른 공부다. 정신의학은 의학의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의 사회,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 일반인, 다른 전문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또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나에게는 이동식, 김채원 선생님, 두 스승이 계셨다. 한 분은 인격도야의 중요성을, 다른 한 분은 과학의 엄밀성을 가르쳐 주셨다. 두 분의 가르침은 마음속의 나침반이 되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다.

 

8. 정신의학신문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귀중한 사업이다. 정신의학의 중요성을 널리널리 알릴 수 있는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조차 이런 신문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홍보를 많이 해야겠다. 사례 소개도 많이 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 영화, 문학, 예술에 대한 분석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국제 연구 동향이나 학술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도 다룰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사들이 의견을 나누고, 일반인들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허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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