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첫 이유식의 기억 – 육아 고민의 첫발

딸아이가 100일이 되어 처음 이유식을 먹이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엄마는 그날을 굉장히 설레며 준비하였고, 그 첫 순간을 아빠와 함께한다며 디데이를 잡았습니다. 딸아이가 모유, 분유가 아닌 음식을 처음으로 먹는 모습은 아빠, 엄마에게 기대한 만큼의 미소를 안겨주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 상자 속에 잘 정리해두었지만, 사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일을 설렘으로만 준비했던 것은 아닙니다. 첫 이유식은 무슨 쌀로 할지에 대한 고민, 잘 안 먹으면 어떡하나 하던 걱정, 앞으로 어떤 이유식을 무엇으로 만들어줄지에 관한 생각들 등 많은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마음을 가장 많이 복잡하게 했던 걱정은 음식으로 지저분해질 딸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엄마, 아빠의 이런 걱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매일매일 이유식을 먹어도 별로 지저분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다행으로 여겼고 딸아이는 그렇게 매일 개월 수에 맞지 않는 깔끔한 모습으로 식사를 했고 기특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딸아이가 이유식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양손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듯 하늘을 향해 있고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줄 때마다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듯 목을 길게 빼며 받아먹었습니다.

이유식을 먹이는 모습은 그 반대였습니다. 이유식이 담긴 숟가락으로 호기심 가득한 자그마한 손이 올 때마다 철벽 방어하는 모습이었고 ‘우리 딸 잘 먹네!’하는 칭찬의 연속이었습니다. 혹여나 방어에 실패해 이유식을 만지기라도 하면 잽싸게 손을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들을 보곤 갑자기 딸에게 굉장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유식이 만져보고 싶진 않았을까? 이런저런 장난도 쳐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냥 아이는 처음 보니까 만져보고 확인하고 싶고, 그냥 놀이일 텐데. 우리가 그냥 무심코 가지고 있던 생각 때문에 아이에게서 경험과 놀이의 기회를 빼앗았구나.’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저의 이런 생각을 말하였고, 놀랍게도 아내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날이 저희 부부가 처음으로 훈육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 날로 기억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훈육(Discipline)의 정의와 그 중요성 – 행동의 Shaping

부모는 자녀의 특정 행동을 강화하거나 혹은 단념하게 하는 역할을 끊임없이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쌓여서 아이들의 행동을 만들어주는 역할(shaping)을 하게 됩니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부모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체벌이나 벌을 피하기 위하여 특정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부모로부터 ‘착하고 좋은 아이’, ‘예쁜 아이’라는 칭찬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선택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아동의 행동 등을 만들어주는 것을 훈육(discipline)이라고 합니다.

영유아기처럼 어린 경우에는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안 할 지에 대해 부모 혹은 넓은 의미의 양육자들의 선택적 반응, 즉 양육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이런 훈육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의 기준들을 만들어 갑니다.

결국 부모나 양육자의 평소 생각, 태도는 훈육의 내용과 방식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특정 문화 안에서 아이들의 정서·행동·가치관·교유 관계 등의 특징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훈육의 논란 ‘벌’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에게 칭찬을 하는 경우도 있고 벌을 하게 되는 일도 생깁니다. 물론, 칭찬도 그 방법이 중요하기는 하나 대체로 칭찬하는 마음은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더 불편하게 하고 더 고민되게 하는 것은 ‘벌’입니다.

벌의 방법과 횟수는 아이들의 정서적인 측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혼자 있게 한다든가, 야단을 친다든가, 때린다든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한다든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특히 명심할 점은 체벌(일정한 교육목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에게 가하는, 육체적 고통을 수반한 징계)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체벌을 자주 받는 아이들은 공격성과 비행이 많다는 보고가 있고,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또한, 체벌을 하는 많은 경우에 양육자의 감정이 섞여 있고 그것이 그대로 자녀에게 노출되고 투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아이들은 본인을 사랑하는 부모와 감정적으로 본인을 체벌하는 부모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게 됩니다. 감정이 절제된 체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이런 것들을 정확히 구별할 만큼 성숙하지 않습니다. 

 

사진_픽셀

 

효과적인 훈육

훈육이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아동과 부모 혹은 양육자의 관계가 애정이 풍부해야 합니다. 둘째, 훈육에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훈육에 일관성이 없어 같은 일에도 혼을 내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면, 아동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동이 부모를 통제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 결과 성격과 행동 조절에 문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벌과 칭찬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부모는 아닌 경우에 비해 언제, 어떻게, 어떤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벌을 줄 것인가를 모르는 경우가 많거나, 나쁜 행동을 보일 때만 벌을 주고 좋은 행동을 보일 때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원하는데, 나쁜 행동에 대한 벌도 관심으로 잘못 이해하게 되고 부정적이기는 하나 원하는 관심을 받는 결과가 되므로 나쁜 행동이 반복되기 쉽습니다.

 

부모가 된 이상 훈육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하게 될 겁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소통의 한 방법이기도 하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훈육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아질수록 기술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뭘 못하게 하고 무슨 보상을 줄지 등 모두 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애정이고 그 애정이 자녀에게 충분히 건강한 방법으로, 일정하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마음껏 사랑해주고 표현해주고 그것을 느끼게 해주시면, 복잡한 고민도 의외로 간단히 풀리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혹시 부모가 실수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은 금방 회복할 겁니다. 요즘 저희 딸은 신나게 좌충우돌해가며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가며 스스로 밥을 먹고 있습니다. 턱받이는 필수 아이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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