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정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변화의 정도에 따라 적응의 고통을 겪게 되지요.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익숙해지면 나아집니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장애’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적응이 미치도록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결국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자신감에 심각한 상처를 받기도 하죠. 이 차이는 도대체 왜 발생할까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적응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개개인의 능력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출중해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적응 장애의 선행 요인(Precipitating stress)으로는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학창 시절 문제(따돌림, 괴롭힘 등), 부모님과의 관계, 결혼 생활에서의 문제, 이혼, 경제적 어려움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과거의 아픔들은 모두 적응 장애의 선행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군대에 가서 병영 생활을 힘들어하는 것이나, 엄격한 집안에서 어려움을 겪던 아이가 커서 조직화된 환경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이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충격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후유증을 남깁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남아 현재의 삶에도 반복적으로 영향을 주지요. 우리는 이를 Minor Trauma라고 부릅니다.

 

 

너는 내 안에 가시로 남아 – 마이너 트라우마(Minor Trauma)

 

정신과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트라우마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들입니다. 재난, 전쟁, 성폭력, 폭행 등등 누가 겪어도 정신적 외상을 입을 만한, TV에 나올 법한 사건들을 이야기하죠. 그에 비해 경제적 어려움, 이혼, 대인관계 문제 등은 훨씬 더 흔할 뿐 아니라 그 정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몇 번씩은 겪는 수준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Minor'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누구나 다 마음속에 하나 이상의 작은 트라우마(Minor trauma) 쯤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트라우마는 손가락에 박힌 조그만 가시처럼 그저 성가시기만 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트라우마가 반복되고 강화되다 보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실제로 적응 장애 중 많은 경우는 이전에 겪었던 마이너 트라우마의 재현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여러 논문들에 따르면 적응 장애의 가장 흔한 증상은 우울, 불안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한 증상들도 이에 못지않게 흔하다고 해요. 비록 현재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커다란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내 안에 숨어 있던 마이너 트라우마들이 함께 떠올라 그러한 증상들을 보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적응 장애와 우리 과거의 아픔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사실 현재의 모든 일을 과거와 연관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현재의 모든 어려움을 과거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특히 더 그렇지요. 하지만 스스로의 과거가 지금의 나를 상당 부분 설명해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지금 적응의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고 있다면, 혹시 과거의 아픔이 또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그 가시를 뽑아내지는 못하더라도 더 깊이 파고들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거든요.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적응 장애의 대처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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