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지용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P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초반의 일반 사무직으로 근무중인 뇌부자들 청취자입니다.

대인기피증과 불안장애 증상으로 문의를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학생 때는 굉장히 활발하고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평가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피부과를 잘못 갔다가 안면홍조가 생기는 일이 있었고, 그 후로부터 얼굴 빨개지는 게 무서워 대인기피증이 생겼습니다. 매운 것을 먹거나 긴장하면 얼굴이 빨개져서 비비크림 바르고 다니기도 했지만 피부만 상할 뿐이었네요. 여전히 활발하고 낯을 가리지 않지만, 동시에 긴장을 잘 하고 연설 같은 것은 잘 못하는 소심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도 부장님께 혼나고 당황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많이 나는 증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사실 저의 상사들은 정말 좋은 분들입니다. 막말하시는 일도 없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 회사 사무실에 있으면 계속 얼굴이 검붉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그냥 혼자서 컴퓨터 보고 있는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 같고, 뭔가 집중이 잘 안 되고 편하지가 않습니다. 혼나서 그렇거나 긴장할 일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냥 사무실에 있으면 뭔가 각성상태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런 증상들의 연속으로 누우면 3초만에 코골고 자던 제가, 중간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면서 잠에서 깬 후 잠에 잘 들지 못하는 수면장애증상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갑상선 문제인가 싶어 대학병원가서 내분비 검사들도 받아봤지만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신경과 가서 알프라졸람이란 약을 처방 받아서 몇 번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정말 효과가 좋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밝아지고, 주눅드는 것도 없고 얼굴도 하얘지고, 심계항진도 없고, 마음도 편하고요. 고민인 것은, 그 약을 먹으면 또 효과가 좋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약을 평생 먹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평생 약을 먹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단지 증상완화를 하는게 아닌,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알려주세요.

 

사진_픽사베이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P씨의 경우 저희가 최근 방송 주제로 다루기도 했던 ‘사회불안장애’가 의심됩니다. 예전엔 ‘사회공포증’이라고 불렸었죠. 이 사회불안장애의 핵심적인 증상은 타인들의 이목에 노출되고 관찰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공포입니다. 연설과 같이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불안, 즉 수행불안이 극심하고, 심한 경우엔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그저 자신이 남들에게 보일 수 있는 장소에 가는 것만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어렵고,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어지게 됩니다. 타인들에게 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공포를 느껴 그러한 상황들을 모두 회피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불안장애의 경우 어떤 특정한 사회적 경험, 주로 어릴 때 겪은 사건이 발병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가 용기를 내 어른들 앞에서 재롱을 부렸는데 비웃음을 당한 경험이라거나, 전학을 간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거절 당하고 텃세를 겪는 것 등의 상황들이 일종의 사회적 트라우마가 될 수 있겠죠. 이런 경험들이 방아쇠로 작용하여 처음에는 비슷한 상황에서만 경험하던 불안과 공포가 점차 일상적인 상황으로 번지게 되고,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이르러서는 병적인 사회 불안 증상이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P씨의 정확한 과거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피부과 치료 도중 발생한 안면 홍조로 인해 느끼셨던 창피함 혹은 수치심이 사회불안장애의 방아쇠로 작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진_영화 '미쓰 홍당무'(제작_박찬욱, 모호필름 / 배급사_빅하우스(주)벤티지홀팅스)

 

P씨께서 알프라졸람 복용 후 경험하셨듯, 사회불안장애에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가 즉각적인 효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약물을 통해 나를 괴롭히던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항불안제를 통한 편안함은 단기간의 효과일 뿐 사연에 적어 주신 것처럼 평생 드실 수는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사회 불안 장애의 주된 치료제는 항불안제가 아닌 항우울제입니다. 우울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SSRI 혹은 SNRI계열의 항우울제를 6개월에서 1년 정도 꾸준히 복용할 경우 약을 끊은 후에도 불안 완화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우울제는 복용 후 1달 정도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충분한 효과를 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즉각 효과를 보이는 항불안제와 같이 처방하게 되죠. 그리고 추후 항불안제는 서서히 용량을 줄여 항우울제 단독투약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법입니다.

 

인지행동치료 기법을 통한 도움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얼굴이 빨개지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라는 P씨 마음 속의 기본 명제에 대해 재접근해볼 수 있습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은 P씨의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을 안 좋게만 볼까요? 순수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혹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왜곡되어 있는 인지적 오류를 치료자와 함께 발견하고 교정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불안을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불안장애 환자 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그분들을 자꾸만 불안하게 만드는 무의식적인 심리 작용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지금의 사연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들인 상사분들을 어려워하는 P씨만의 무의식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죠.

 

마지막으로 꼭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약물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꾸준한 약물 복용을 통해 불안 증상이 없는 상태를 계속 경험하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P씨의 무의식이 사무실을 비롯한 여러 장소들을 안전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거든요. 높은 불안으로 인해 P씨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P씨께서도 매우 답답하시니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저희에게까지 연락을 주셨겠지요. 약물치료의 긍정적 효과를 이미 경험하신 만큼, 꾸준한 치료를 통해 오랜 시간 P씨를 옭아매고 있는 불안이란 굴레를 벗어 던지게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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