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쓰거나, 사인을 할 때면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요.”

“친구들 앞에서 칠판에 있는 문제를 푸는 것이 너무 끔찍하고 두려워요.”

“밥을 먹는 중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식은땀이 흘러요.”

“자기소개 시간이 되면, 어딘가에 숨어있고만 싶어요.”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아이작 막스 (Issac Marks)는 그의 저서에서 다른 이들 앞에서 서명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등의 특정 행위를 하는 데 대한 공포감을 느끼는 환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가 기술한 현상이 바로 수행불안 (performance anxiety) 이다. 수행불안은 사회불안 (social anxiety)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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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불안 (social anxiety) 의 뇌과학

 

인간의 뇌에서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서는 상황을 일종의 '위기 상황'으로 인식한다. 타인의 인정 여부는 사회적인 생존, 나아가서 실제적인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뇌의 인식은 체내의 교감신경을 활성화 시켜 상황에 더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지적, 신체적 긴장은 대중 앞에서의 행동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사람들 앞에 선 직후에는 긴장이 되지만,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서 부교감신경이 반대급부로 활성화되며 점차 긴장과 흥분된 신체 반응들이 사그라들고, 발표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수행불안 (performance anxiety)에 감추어진 생각들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나 가수처럼 많은 대중 앞에 서는 이들 뿐만 아니라, 서류에 사인을 하거나 누군가 지켜보는 가운데 업무를 해야 하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수행불안이 나타나 큰 지장을 받는 이들이 있다. 대개는 처음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후 잠깐 긴장했다가, 이내 자신이 하던 업무에 집중하며 긴장감이 사그라드는 경과를 밟게 되지만, 수행불안의 정도가 심한 사람은 지속해서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자신이 하는 행동 자체에 지나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의식의 더 깊은 수면 아래에는, ‘내가 이 정도도 하지 못하는 결함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면 안돼’라는 존재론적인 불안이 내재해 있다.

결국, 이러한 생각들은 더 큰 긴장을 낳고, 주의력을 흐트러뜨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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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I :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들을 인식하기

 

1) 수행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는 인지 왜곡이 도사리고 있다

: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생각 안에 숨어 있는 인지 왜곡이, 심한 감정적인 불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왜곡된 생각은, 아래의 도식처럼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심한 감정적, 행동적, 생리적 반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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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본다는 생각에는, 타인이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독심술의 오류가 도사리고 있다. ‘내가 이 정도 상황에서는 완벽하게 잘 해내야 해’ 라는 생각에는 당위 진술의 오류가 숨어 있다. 타인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결국 소문이 나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파국적인 결말만 예상하는 재앙화가 숨어 있다. 타인 앞에서 불안한 상황이 지나면, 한 번 자신이 그때 어떤 생각을 떠올리며 불안해 했었는지 적어보고, 인지 왜곡이 숨어 있음을 파악하는 것은 불안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생각을 적어보고, 증거 찾기

: 불안했던 상황에서의 생각들을 종이에 한 번 적어보자. 그리고, 그 생각의 근거가 되는 것을 찾아보기 위해 스스로에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타인 앞에서 긴장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왜곡된 생각이 아닌, 다른 대안은 생각할 수 없을까? 내가 아닌 가까운 친구가 그런 상황에서 불안해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이처럼 생각의 불합리성을 찾고,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담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3) 최악, 최선, 현실적인 상황을 가정해보기

: 타인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어, 결국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이런 재앙화가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내가 불안하고 긴장할 때 최악, 최선의 상황을 적어 보도록 하자. 다만, 최악의 상황을 기술할 때는, 인지 왜곡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고 나면, 결과가 어떠할지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과정들은 모두 직접 손으로 적으면서 정리해야 한다. 생각하고, 손으로 적고, 이를 다시 눈으로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합리적인 결론들을 뇌세포들 안에 각인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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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II : 합리적인 생각들을 도출하기

 

: 위의 과정들을 통해 합리적인 생각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면, 이후에는 이 생각들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무기가 될 수 있는 짧고 강렬하며, 합리적인 ‘한 마디’를 만들어 보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내가 처음에는 손을 떨어도, 1분 이내에 금세 가라앉고 집중할 수 있어’

‘누구나 처음에는 긴장하기 마련이야’

‘실수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어’

 

와 같은 짧고 효과적인 한 마디를,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수첩 등에 적어 다니면서 늘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생각의 오류를 인식하고, 건강한 생각으로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생각들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수행불안을 극복하는 방법 III : 실생활에 적용하기

 

: 합리적이고 건강한 생각이 도출되었다면, 이후에는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단계이다. 자신이 가장 힘들어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찾아, 나열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 상황들 각각에 가장 덜 불안한 상황부터 가장 힘든 상황까지 순위를 매겨본다. 매겨진 순위를 바탕으로, 가장 불안함이 덜한 상황부터 설정하여, 실제 상황에 직면토록 하자. 만약, 혼자의 힘으로 어렵다면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와 상의하여 가장 흡사한 상황을 모의로 설정하여 반복하는 것도 괜찮다. 한 상황이 익숙해져, 불안감이 덜해지고 나면 그 다음 단계의 상황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이 전의 과정에서 각인된 합리적인 생각이 있다면, 미리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과정, 상황의 중간에 불안이 올라오더라도 이미 도출된 합리적인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상황에 적응해가는 과정들 속에서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안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요컨데, 수행불안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불안을 없애는 것’ 이 아니라, ‘불안한 상황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 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불안을 대하는 생각을 다루고, 이러한 생각을 유발하는 상황들에 반복적으로 직면하면서 조금씩 익숙함과 여유가 생기게 할 수는 있다. 그 과정에서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의 분석과, 합리적인 생각의 도출의 과정이 든든한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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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불안감을 유발하는 상황의 기저에는, 일어나지 않은 상황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다. 그리고, 과도한 불안에는 왜곡된 생각들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수행불안을 유발하는 생각들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불안한 상황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 수행불안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위에서 기술한 내용들은, 사회불안의 비약물치료 중 장기간의 연구 결과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인정받은 ‘인지행동치료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에 포함되어 있는 기법들이다. 만약 혼자의 힘으로 위의 방법들을 해 내기 어렵다면, 당연히 경험이 풍부하고 숙련된 전문가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다.

 

 

글쓴이_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前) 국립부곡병원 진료과장
(前) 국립공주병원 진료과장 /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센터 진료과장
(現) 순영병원 진료과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평생회원
대한불안의학회 불안장애 심층치료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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