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미팅이나, 소개팅, 혹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첫눈에 반하는’ 상대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방의 상체 뒤편으로 후광이 비치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아득해지기 시작한다. 동공이 확장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른 침을 삼키게 된다. 상대방과 손을 잡고 데이트하는 상상까지 빠져드는 데 불과 몇 초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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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다’는 말의 속사정

 

첫눈에 반한다.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마치 멀리 흩뿌려져 있던 퍼즐 조각이 그제야 딱 맞게 들어맞는 것처럼, 어딘가에 있던 그 누군가를 결국 오늘, 바로 여기서 만난 느낌이란! 마치 전기가 통하듯이, 찌릿한 느낌이 온 몸을 관통한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다’는 말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깊은 곳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파편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A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A군은 오늘도 상기된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어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하며, 그 사람의 인상과 생김새, 성격 등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절친한 친구 B군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 던진다. ‘저 X끼 저거, 맨날 자기가 감당 못할, 똑같은 애들만 좋아한단 말이야. 이해가 안 돼’ A군이 늘 빠져드는 상대의 면면을 보면, 늘 비슷했던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늘 착하고 바보 같을 정도로 배려심이 많은 A군에게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고, 불안정해 보이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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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다’=익숙한 사람을 만났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고 가도록 하자. 사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허상에 가깝다. 인간의 뇌는 자신이 겪은 상황, 만나는 사람과 같은 주어진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일종의 틀 (frame)을 사용한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인지모델 (cognitive model)에서는 스키마 (schema)라고 한다. 관점, 세상을 보는 눈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해 보자. 작은 요리를 하나 만들 때에도, 처음에는 물의 양과 소금의 양, 밀가루의 양 등을 1mL 단위로 세밀하게 계량한다. 티스푼으로 조미료를 넣을 때도 약간은 떨리는 손으로 신중하게 넣게 된다. 이렇듯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눈으로는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도 빠지는 재료 없이 요리가  진행된다. 들어가는 재료들도 ‘시크하게’ 한 줌 집어 팍팍 뿌려도, 예상했던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뇌에서는 그 행위를 위한 일종의 신경전달 트랙을 만들어낸다. 신경세포들이 연결되어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신경전달 트랙이 형성되고 나면, 동일한 상황을 분석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마음이 수동조종 상태에서, 더 효율적인 자동조종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쌓인 경험들은, ‘더 이상 무의미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뇌 신경들 간의 연결을 촉진한다. 결국, 형성된 신경전달 트랙은 ‘같은 상황에서는’ 동일한 틀(frame)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고 또 반응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시스템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유연성은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자신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익숙한 것, 과거에 편안하고 좋았던 것을 반복적으로 추구하거나, 자신에게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경험들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노력을 반복하게 된다. 즉, 새로운 상황도 본인이 가진 틀로 바라보게 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신이 성장 과정에 겪은 경험들은, 점차 주변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필터링하기 위한 스키마를 만들어 낸다. 걸러진 정보들의 결과는 대부분 본인이 의식하는 수준보다는 더 깊은 곳에 머물러 있기에,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키마의 작동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무의식에 흩어져 있던 기억의 편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스키마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결국, 자신이 ‘한눈에 빠진’ 상대를 볼 때,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스키마가 열심히 작동하여 자신의 기억 속에서 만족감을 주었던 상대와 비교, 분석하여 공통점을 찾아낸다. 이 또한 *스키마 화학 작용(schema chemistry)라고 할 수 있겠다. (*: 마치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이, 짧은 순간에 동시 다발적으로 스키마의 영향으로 인한 생각, 행동, 신체반응이 나타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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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방에게 한순간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매력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본다면 내가 성장과정에서 경험했던 ‘행복했던, 좋았던, 편안했던’ 상대와의 기억들의 반복일 수 있다. 많은 남성이 매력적이라 여겼던 여성들을 돌아본다면 자신의 이상적인 어머니상과 닮은 점이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여성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아버지의 상을 배우자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자신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었던 부모, 혹은 중요한 인물과는 전혀 닮지 않은 인물을 찾으려는 무의식적 노력의 산물로 ‘극단적으로’ 반대급부의 사람을 찾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회피적 선택에 기반을 둔 사랑은 불완전하기 마련이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에는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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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무의식적 의미를 아는 것

 

거창하게 통찰(insight)이라는 말을 쓸 필요까지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물론, 피상적이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우리에게 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얽히고, 더 나아가 부부, 평생의 친구 등으로 맺어지는 깊은 관계라면 경직된 뇌, 불완전한 스키마의 명령에 따라 자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한 번쯤은 자신이 겪어왔던 사랑하는 이들의 면면이 어떠한지, 그들 사이에 공통점은 있지 않은지, 과거의 익숙했던 혹은 피하고 싶었던 이들과 관련이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앞으로의 만남을 더 건강하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될 것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들춰내는 일은 꽤 불편하고 힘든 과정이다. 적잖은 애도의 시간과 통렬한 고통의 시간이 닥쳐올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조각들이 정리된다면, 여러분의 관계는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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