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주렁주렁 걸려있는 수액, 바싹 마른 입에 물려진 인공호흡기.

 

누구도 이런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이 우리 삶에 들어온 이후, 대다수의 현대인이 맞이하는 흔한 죽음이다.

 

우리 모두는 늘 고통 없는, 평화로운 죽음을 원한다. 하지만 병이 깊어지고 환자의 의식이 흐려지면, 가족들은 보호자의 도리를 다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기 주저한다. 이런 가족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자신이 사랑하던 이가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시켜, 사실상 그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일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치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호자가 요청한다 할지라도,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등의 행위는 불법이다.

 

1997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아있던 한 노인이 가족들의 요청으로 치료를 중단했으며, 퇴원 후 사망했다. 주치의는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가족들의 서약도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주치의와 가족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방조죄를 선고했다.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 이다. 환자의 심장이 멎었을 때 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인 DNR(Do not resuscitation) 역시 법적 효력이 없다. 따라서 주치의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쉽사리 적극적인 치료를 그만하자고 설득하지 못한다. 주치의 자신이 살인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 인간은 다음과 같이 죽음을 정의할 수 있게 됐다. '순환기와 호흡기 기능의 비가역적 중단 또는 뇌간을 포함한 뇌 전체 기능이 중단된 것'. 뇌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심장과 폐가 먼저 멈춘다. 이로 인해 피가 뇌로 가지 못하고, 뇌는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이렇게 심장, 폐, 뇌가 모두 망가져 사람은 의학적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인공호흡기나 체외혈액순환장치로 망가진 심장과 폐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은 죽음을 연기시킬 수 있게 됐다. 반대로 말하면, 장치를 멈춤으로써 죽음의 시점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금기였기에, 우리는 이렇게 연장된 삶에 대처하기 어려웠다. 아무 준비 없이 연장되어버린 삶은, 가족과 사회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늘렸고, 의사를 양심과 법의 한계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환자는 연장된 삶만큼의 고통을 더 받았다.

 

사진_픽사베이

 

이런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2018년 2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

 

이 법의 목적은 치료를 해도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사용 등의 치료 없이 통증 같은 증상만 조절하여 편안히 존엄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병에 대한 치료 없이 고통을 최소화해서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내용을 담은 법인만큼, 법의 집행 과정도 조심스럽다.

먼저 환자 본인 혹은 가족 중 두 명 이상이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을 담당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이 요청을 받은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한 명이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임을 인정하고, 이를 윤리위원회가 심의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의식이 없는데 연명치료에 대한 사전 의사표명도 없었다면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위 과정이 진행되며, 이 모든 과정은 문서로 남겨지고 보관된다. 환자를 죽이는 약물을 주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안락사와의 차이점이다.

 

이 법의 취지대로라면, 환자는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가족은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 것이고, 의사도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연명의료결정법이 불러 올 부작용은 없는 걸까. 환자가 원하는 죽음을 누리게 하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기에, 환자가 원치 않는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이 법의 부작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가 원치 않는, 이른 죽음이 결정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쉽게 말해, 환자가 더 빨리 죽으면 누가 이득을 보게 될까?

 

일차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당연히 가족이다. 한 사람은 65세 이후에, 전체 인생에서 쓰이는 의료비의 절반은 지출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기간은 죽음을 앞둔 몇 개월이다. 그 기간을 줄임으로써 가족은 당연히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환자 위주로 돌아갔던 보호자의 삶도 다시 찾을 수 있으니, 이 점 역시 이득이다. 만약 환자가 의식이 없다면, 보호자들은 이런 이득에 더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다음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의사와 병원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아 생길 수 있는 ‘살인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 뿐 아니라 이 법으로 인해 병원은 일부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병원의 주 수입원은 수술 혹은 시술이다. 이런 처치를 받은 환자가 퇴원을 해야 그 자리에 다른 환자를 입원시켜 수익을 낼 수 있다. 중환자실은 환자가 내는 의료비가 많지만 병원이 수익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소아중환자실은 운영 할수록 돈을 벌기는커녕 적자가 발생한다. 중증환자가 빨리 죽어 이런 부차적인 이득이 생긴다면, 병원은 어떤 결정을 선호할까.

 

정부 역시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이득을 보게 된다. 이 법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시기를 단축시켜주는 법이다. 따라서 의료비를 줄일 수 있기에 가족들이 경제적 이득을 본다고 위에서 기술했다. 중증환자는 원래 의료비의 5%만 부담한다. 즉, 원래 의료비의 95%를 부담하는 정부가 경제적인 면으로 봤을 때 가족이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게 된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연명의료결정법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형태의 죽음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가 연명치료에 대한 사전 의사표명 없이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과연 이 법은 환자를 어디로 데려갈까. 또 환자가 자신이 죽음을 더 빨리 선택 할수록 가족들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가 선택하는 죽음이 과연 존엄한 죽음인 것일까.

 

사진_픽사베이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이런 현재 상황과 딱 맞는 설화가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자녀가 노부모를 산 속에 버린다는 이야기, 바로 고려장이다. 조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저항할 힘조차 없는 노부모였다면 가만히 집에 둬도 곧 돌아가실 텐데, 굳이 산속에 버릴 이유는 없다. 지게에 실려 가는 노부모는 아마 저항할 수 있었지만, 자녀의 처지를 알기에 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설화는 자녀가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할 것을 염려해 나뭇가지를 꺾어 길을 표시한 것을 보고 자녀가 마음을 바꿔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으로 끝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취지대로만 집행된다면 이런 걱정은 기우겠지만, 혹시 모르니 이 설화의 교훈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 속 노부모의 지혜와 아량이 현재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화 속 교훈의 핵심은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했다는 것에 있다. 노부모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자녀를 돌보는 것에 뒀고, 그에 맞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했다. 자녀가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부모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니다. 자녀가 마음을 돌린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이 설화와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죽을 수 있는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원하는 죽음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만 한다. 또 본인을 위해 그런 고민을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해야만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주변사람의 이득에 따라 휘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민은 쉽지 않다. 내가 죽을 수 있는 시점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까지 6개월 밖에 남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 법에 대해 충분히 홍보하고 교육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건국 이후 만들어 진 죽음에 관한 법 중에 가장 획기적인 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에 대한 국내 보건의료 정책과 인구 노령화를 같이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가설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국민들의 수명을 제한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진_영화 킹스맨 (수입 및 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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