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나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가 많습니다. 성인 소아 할 것 없이, 한여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발열환자가 늘었네요. 대부분 목감기로 통칭하는 다양한 바이러스성 질환들입니다. 인후두염, 구내염, 편도염, 헤르판지나 등이 있지요.

 

이 질환들은 고열과 인후통이 특징입니다. 약 3일에서 5일 정도 고열이 나다 저절로 열이 떨어지면서 낫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저절로 낫게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두 개가 있지요. 하나는 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후통으로 도통 먹질 못하는 아이가 탈수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 질환은 각자의 면역기능을 통해 저절로 이겨내게 되므로 이 기간 동안 열과 탈수라는 두 가지 산을 잘 넘는 것이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병원의 짧은 진료시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열 조절과 탈수 방지의 노하우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아이들 키우다 보면 응급실 갈 일, 한 번씩 생기죠. 응급의학과 의사인 저도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종종 응급실 신세를 집니다. 저라고 별 수 있나요. 특히 39도가 넘어가는 고열이 나면 열성경련을 막기 위해서라도 응급실로 달려가 해열진통제 주사(성분명 디클로페낙)를 맞춥니다. 고열이면 불안해 항생제를 쓰는 경우도 있고요. 열성경련 예방처치라고 부르는 물찜질(테피드 마사지)도 해야 하죠. 열나는 아이를 데려온 보호자에게도 같은 설명을 드립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선생님들과 똑같죠?

 

그래도 아무래도 몇 가지 노하우가 더 있다 보니 보호자에게 설명할 거리가 늘어납니다. 특히,

 

“집에서 물찜질 잘 해주시나요?”

하고 물어보면 많은 어머님들이

 

“우리 애가 물찜질을 싫어해서요...”

하며 말끝을 흐리십니다. 응급으로 열을 조절하기 위한 주요 방법 중 하나인 물찜질이 많은 수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럼 물찜질, 테피드 마사지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까요? 물찜질은 고열이 나는 환아의 몸에서 열에너지를 뺏어내기 위해 물이 증발하면서 소비되는 기화열이라는 기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에서 수증기가 될 때 에너지가 필요해 피부 표면의 열에너지를 뺏어가는 과학 기전을 활용하는 것이죠. 차가운 물의 온도로 체온을 낮추는 기전이 아닙니다.

 

더운 여름에 샤워할 때 찬 물보다 약간 따듯한 물로 샤워하는 게 좋다고 하잖아요? 비슷한 기전입니다. 몸의 모세혈관도 확장되고 오한도 줄이는 것이죠. 그래서 아이의 물찜질에도 찬물보다 약간 따듯한 정도의 미지근한 물이 효과가 더 좋습니다.

 

사진_작가

 

하지만 이런 과학적 기전을 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적용할 때 물찜질을 잘 하는 것은 아니죠. 응급실에서도 뒤편에 자리 마련해드리고 미지근한 물 준비해드리면 아이는 낯선 환경에 울고 있고 엄마 아빠는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아이가 놀라 빽빽 우는데 과연 열이 떨어지긴 할까요? 열이 더 나지 않으면 다행이겠죠.

 

정말 40도 넘는 고열에 축 쳐진 아이이거나 당장 열성경련을 해서 온 것이 아니라면 저는 다음과 같이 교육시키고 집에 보내드립니다. 집에서 물놀이하고 재우시라고요. 물놀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근데 그걸 응급실에서 하려니 아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욕실 욕조에 따듯한 물을 10~15cm 깊이 정도 자박하게 깔아놓고 아이와 함께 욕조에 들어갑니다. 화분에 물을 준다며 몸 이곳저곳, 머리부터 주욱 물을 묻힙니다. 물 튀기기 놀이를 해도 좋죠. 아들과 함께할 땐 물총놀이도 하게 되고요. 습도는 낮을수록 기화가 잘 되니 요즘 같은 여름날에는 욕실 문을 살짝 열어두는 것도 좋겠죠? 겨울엔 추우니까 환풍기를 틀어도 좋겠군요.

 

자, 아이와 함께 웃고 떠들며 물놀이하는 사이에 어느새 아이 체온도 뚝 떨어졌군요. 열만 떨어지면 아이들 컨디션 금방 좋아지죠. 재잘재잘 말도 많아진 내 아이 모습에 부모의 긴장도 다 녹아내립니다. 이제 시원하게 에어컨 켠 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잠들면 열나는 내 아이 하루 보내기 미션 성공입니다.

 

사진_작가

 

두 번째 산이 남았죠? 목이 아프다며 도통 먹지 않는 아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목에 수포가 보일 정도로 염증이 진행되면 아이들, 물도 못 넘길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어른도 똑같죠. 편도염 심하게 오면 밥맛 없고 밥 넘기는 게 꽤 고역인 일이 되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먹고 싶은 것 먹어야겠죠.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가 입안 염증을 덜 자극해 먹기에 고통이 덜합니다. 아이들도 똑같죠. 먹고 싶은 것 먹게 하시고 아이스크림도 이럴 땐 못 이기는 척 허용해 주세요. 저희는 아이스크림 대신 얼린 과일을 두고 먹이는데 이것도 효과가 좋습니다. 얼린 감, 얼린 망고, 얼린 딸기, 얼린 블루베리... 특히 가을에 박스로 사놓고 얼려둔 홍시는 한여름에 아주 좋은 간식거리죠. 요즘은 껍질 벗긴 아이스홍시가 상품화되어서 나오더군요. 좀 비싸긴 하지만...

 

사진_픽사베이

 

다만 아이가 얼린 과일이나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물도 전혀 못 넘기는 상태가 24시간 이상 지속된다면 수액치료를 위해 입원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한 번 맞는 수액은 많아도 500cc 정도로 탈수를 충분히 보정하기엔 적기 때문에 병실이 허용한다면 수액을 달고 입원하는 것이 나을 수 있죠. 병실이 없으면 하루하루 수액 맞으면서 며칠 버티는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탈수되기 전에 수액 맞겠다며 한 끼만 못 먹어도 미리 응급실 찾으시는 어머님 계시는데... 글쎄요, 저는 너무 이른 수액치료는 의미 없다고 봅니다. 그 수액 금방 소변으로 나오거든요. 아이한테 주사 트라우마만 주고 마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 너무 빨리 와도 도움 안되지만 또 너무 버티면 아이도 엄마도 고생하게 마련이니까요, 현명하게 응급실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응급실 사용 설명서, 짧은 진료시간, 병원에서 들을 수 없었던 열 조절과 탈수 보정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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