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선배가 후배에게 전하는 교훈 :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님 인터뷰

 

종래에는 의사의 역할을 의사와 환자 사이의 진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최근에 들어서는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역할이 의사에게 요구되고 있다. 오늘날의 의사는 진료관계의 역량뿐만 아니라 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사회적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의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까닭 중에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는 의사들의 잘못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이바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사도 분명 있다. 과거 대학병원 주임과장 및 약물학회 이사장을 비롯한 주요학회 학술활동을 하셨으며, 현재는 기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동화약품 회장 윤도준 선생님이 좋은 예이다.

 

윤도준 선생님은 2012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가장 명예로운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 plenary lecture에 서기도 하셨다. 당시에 '후배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다'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역할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의사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윤도준 선생님은 본 신문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국내 상태를 염려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책임을 강조하셨다.

 

"지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할 일이 많다. 진료실에만 있을 상황이 아니다. 나라가 혼란스럽다. 가정폭력을 넘어서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상황이고 자살율도 계속 높고. 개인이, 가족이, 그리고 사회가 정신병리로 고통 받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지금 사회시스템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러한 상황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신질환 관련 사고가 뉴스에 나오면 누군가는 '정신질환 무섭다, 위험하다'며 정신질환에 이환된 환자 개인의 문제로 보지만, 누군가는 환자가 정신질환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찾으려고 애쓴다. 윤도준 선생님은 개인의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서만 찾지 않고, 가족 그리고 사회에서 찾아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인간의 정신은 사회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인간을 만든다. 결국 인간의 정신세계는 사회에 의해 교육을 받으며 형성이 된다. 이러한 까닭에 윤도준 선생님은 문제의 원인을 사회에서 그리고 해결책을 교육에서 찾고자 하셨다. 이러한 맥락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사회적 책임감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전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면 공과대학을 갔는데, 이제는 의과대학을 간다. 의과대학에 온 학생들은 국가적인 브레인이다. 그런데 지금 의과대학에서 환자 보는 것만을 가르친다. 정부와 의과대학이 협력해서 환자만 보는 의사를 만들 게 아니라,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던지 바이오헬스케어처럼 부가가치가 큰 사회기업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특히 선생님은 의과대학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관에 대한 교육이 미비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정신 건강'이 중요하다며 막연하게 강조하고 있는데, 민족 정체성이나 역사관 없이 '정신'을 강조할 수 없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민족인데도 학교에서는 민족 정체성이나 역사관에 대한 교육이 없다."

 

사진_위키미디어 공용

 

사실 동화약품은 독립운동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윤도준 선생님의 조부께서는 독립운동단체 신간회의 간부를 지냈으며, 부친께서는 광복군에서 중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셨다. 남다른 집안내력이 윤도준 선생님의 나라사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윤도준 선생님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기업가로 활동하며 느낀 소중한 교훈 또한 잊지 않고 알려주셨다.

 

"환자를 볼 때 다른 의사처럼 나 또한 증상이나 징후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회사를 와서도 그런 습관이 지속되었다. 회사의 상황이나 직원들을 볼 때 좋은 점 보다 나쁜 점을 찾게 된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집단 구성원들의 장점을 찾고 키워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성원들의 단점을 찾고 없애려 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우리는 칭찬보다 처벌에 익숙해져 있다. 긍정적인 보상을 주로 사용해야 갈등도 줄어들고 능률이 오르는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나 또한 기업인이 된 지금에서야 직원들의 좋은 점을 보려 하고 긍정적인 보상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우리 상사님들은 칭찬보다는 처벌에 익숙해져 있을까. 우리나라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요리사가 요리를 잘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운전기사가 운전을 잘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그리고 의사도 당연히 치료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옆에 직원이 잘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칭찬은 패스한다. 하지만 잘 못하는 순간 온갖 비난을 퍼붓는다.

 

필자가 전공의 때 교수님과 환자에 대해 의논하며 경험했던 일화가 있다. 교수님께서 환자의 증상, 이러한 증상을 유발한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물어보셨다. 평소 자주 고민하였던 내용이라 막힘없이 말씀드렸다. 내용이 너무 길었는지 교수님께서 하던 이야기를 멈추게 하시고 다른 주제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 환자의 장점은 뭐니?" 순간 필자의 머리는 백지가 되었다. 문제점을 찾아 개선시키면 빠른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기에 그동안 문제점 찾기에 온 정성을 쏟았었던 것이다. 전공의였던 필자에게 환자의 장점을 살릴 만한 시간적 여유 그리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이후 환자의 장점을 찾기 위한 면담들이 진행되면서 환자와의 진정한 라뽀(rapport)가 형성되었다.

 

윤도준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내용들은 의사들을 그리고 기업가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누구나 명심하고 있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사진_픽셀

 

과연 의사들은 사회적 역량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2013년 의학교육학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288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한국 의사가 바라본 의사의 사회적 역량: 의사 대상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에서 응답자들은 사회적 역량 세부항목들에 대하여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데에 반하여, 자신의 동료들이 그 역량을 어느 정도 발휘하고 있는지를 물었을 때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이 연구에서 사회적 역량 진흥을 위해 시도될 수 있는 방안들 중 '전공의 수련 제도에 대한 개선'을 높게 인지하고 있었다.

 

의사라는 혹은 전문의라는 타이틀은 프로페셔널리즘 professionalism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의사도 과거 학생일 때가 있었고, 아마추어일 때가 있었다. 의사도 결국 이 사회에서 생성된 결과물이다. 의사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 이를 의사 개인의 인성 문제로 보는 시선을 자주 접하게 될 때마다 아쉬움이 많다. 분명 의대생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성숙한 의사가 되는 교육을 의과대학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아마 윤도준 선생님은 의대 학생부터 대학병원 과장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하셨기에 의사 후배들의 프로페셔널리즘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

- 안덕선, 의사의 사회적 역량이란 무엇인가? J Korean Med Assoc 2014; 57(2): 96-103.

- 김정아, 권복규, 한희진, 허윤정, 안덕선, 한국 의사가 바라본 의사의 사회적 역량: 의사 대상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J Korean Med Assoc. 2014 Feb;57(2):128-136.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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