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호스피스 병동이라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들이 모여있기에 뭔가 고요한 병동에 다들 기운 없이 침대에 기대 있는 그런 모습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기대를 저버려 미안하지만, 반전은 없다. 사실 그러하다. 다만, 그곳에서도 드문드문 웃음이 피어난다는 것. 삶은 지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의외로 삶의 끝을 향해가는 여정 속에서 다들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환자도 환자지만 보호자들과 간병인들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는 많이 다를게다. 감정이 무뎌진 차분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 후에 올법한 차분함을 엿볼 수 있다. 대개 그런 경우에는 하루 이틀 병수발을 든 사람들이 아니다.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병수발을 들다가 이제 호스피스란 종착역에서 짐을 싸는 듯한 기분으로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진_위키피디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 병원, 그곳에서 가장 높은 13층에 위치한 호스피스 병동은 특히나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전경이 좋다. 일산 시가지와 병원 앞 공원, 멀리 북한산까지 보이는 탁 트이고 고요한 그 풍경은 그곳과 제법 잘 어울린다. 병원이란 곳은 원래 일화가 많다.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생사가 오가는 사투 속에서 희로애락이 넘쳐남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주변 의사를 붙잡고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길 해달라고 한다면, 나처럼 말 많은 의사는 밤새 이야기를 풀지도 모른다. 수많은 일화가 있어 다 적자면 책을 람세스 전기 수준으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호스피스 병동 근무 시절에 기억나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적고자 한다.

 

말기 암 환자, 적극적 치료가 주는 효과와 그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부담 그 사이의 저울질에서 더 이상 적극적 치료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난 분들은 여생을 좀 더 고통을 덜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마지막을 보내고자 호스피스를 선택하곤 한다. 사실 대다수의 환자는 정신이 멀쩡하다. 다만 기력이 쇠할 뿐. 의식이 없는 경우는 주로 뇌출혈 혹은 뇌경색으로 인한, 그리고 뇌종양이 생겨 의식의 혼탁이 온 경우 정도인데, 이 뇌종양이, 특히 사람의 성격을 좌우하는 부분에 생기는 경우가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경우이다. 몸은 움직이지만 이젠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인격체의 환자를 똑같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막상 닥치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본 환자의 경우도 그러한 경우였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을 앓은 분으로 이전에 참 인자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올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의식은 있지만 드문드문 본인이 어디에 있고 누군지 전혀 모르는 정도의 지남력 혼란 정도의 증상만 있었다. 주 보호자는 부인과 외국에서 아버지가 아프다고 입국한 딸. 그렇게 두 명이었다. 부인은 늘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먹고 자고 하는 와중에도 깔끔하게 다니시는, 참 곱고 예의 바르고 기품 있으신 분이었다. 한편으론 그런 모습들에서 담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진_픽사베이

 

입원 후 그리 오래지 않아 며칠 동안 증상은 급격히 나빠졌고 우리가 확인한 뇌 CT 상에서의 종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한정된 두개골 내의 공간에 그리 큰 종양이 커지고 있으니 어떻겠는가. 두통은 갈수록 심해졌고 그의 인격 또한 변하여 처음의 가벼운 지남력 혼란에서 나아가 소리 지르고 화내고 때리는 등 인격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그런 변화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부인은 전혀 의료진에게 컴플레인1하지 않고 다만 우리의 치료에 적극 따라줬다.

 

아침저녁으로 뇌의 종양 덩어리 및 주변부의 부종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그의 격양된 행동들을 줄일 수 있는 약들을 투여하며 적절한 용량을 매일 조금씩 조절해나갔다. 적절한 용량을 맞춰가는 동안 애로사항이 많았다. 미세한 조절이고 환자에 따라 반응도 다르기에 약을 투여한 후 환자를 세심히 관찰하며 디테일2하게 조절하는 것 말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어떤 날은 약 용량이 많아 환자가 너무 가라앉아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약 용량이 부족하여 환자가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낮밤으로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내내 환자 상태에 대한 간호사들의 전화를 받고 직접 가서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돌아와 약물 용량 조절에 대해 회의를 하곤 했다.

 

사진_픽사베이

 

의료진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화를 내기도 한다. "아니,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냐고, 왜 이렇게 조절이 안되는 거예요?" 틀린 불만도 아니기에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사실 현대의학은 엄청나게 발전하긴 하였지만 동시에 아직도 한계는 명확하다.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을 잘 알고 그중에 할 수 있는 것에선 최선을 다한다. 그 부인께 감사드릴 일은, 그 과정들 속에서도 우리에게 나무람이나 원망의 소리 없이 믿고 따라주시며, 늘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잘 해달라고 그렇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입원한지 2주쯤 지났을까. 한창 환자의 증상 조절을 하다 겨우 안정화되었을 때 즈음이다. 나는 잠깐 바람 쐬기 위해 병원 앞 공원 벤치에 가던 길이었다. 저 멀리 구석에 흡연구역이 있었는데 (병원 공간은 아니었다) 그 부인이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피는 사람이 따로 있냐만서도 이전에 보았던 기품 있던 부인의 모습을 생각하면 새삼 의외였다.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의 표정보단 좀더 슬픔이나 분노가 없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빛, 그러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병원으로 다시 향했다. 마치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을 마치고 담배 한대를 피우고 하늘을 바라보곤 신세한탄도, 욕지거리도 없이 무심히 다시 일터로 터벅터벅 무겁게 돌아가는 것 마냥. 그렇게 우리의 보존적 치료는 대부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환자는 증상 조절이 잘 되기 시작했고 가끔은 의식을 찾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부인과 딸은 그 상황이 감격이었기에, 의료진에게 많은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해피엔딩이면 좋으련만 잊진 말자, 우린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놀라기 전에 미리 말하자면, 환자는 결국 돌아가셨다. 치료가 순조로웠다면서 돌아가셨단 건 뭐냐고 따진다면, 호스피스란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의미 없는 치료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이제 여생이 어느 정도 정해진 환자들이 여생 동안 질병의 고통에서 좀 벗어나고 심신이 안녕한 상태로 죽음에 다가가는 그 시간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사진_픽사베이

 

의사는 그 속에서 해결사가 아니라 아직은 많은 분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죽음을 죽음답도록 가꿔주는 정원사 역할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 환자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발병부터 적극적 치료, 보존적 치료까지 참으로 우여곡절 많은 과정을 잘 버텨준 환자, 그리고 그 옆에 계시던 부인. 눈물은 우리 모르게 홀로 감추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파극처럼 우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 한번 하지 않으셨다. 과정은 참으로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죽음을 향해 나가는 마지막 과정은 순조로웠다.

 

 

각주
1: 컴플레인(Complaint): 불평, 불만
2: 디테일(Detail): 세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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