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조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올해 3월 인천여아살인사건이라는 끔찍한 범죄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이 정신장애를 근거로 형의 감경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갑론을박을 펼치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벌인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신장애인의 범죄행위의 경우 그 책임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음이 타당한 것인지 정신의학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_Daniel M'Naghten(위키미디어공용)

 

정신장애를 가진 범인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형을 감경해 주는 것은 ‘맥노튼 룰’의 적용에 따른 것이다. 맥노튼 룰은 1843년 영국 수상을 살해하려고 한 다니엘 맥노튼이 범행 당시 피해망상에 시달려 수상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점이 인정되어 무죄를 선고 받은 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맥노튼은 현실 판단이 불가할 정도로 망상이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의 정신세계에 있어서는 수상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했을 것이다. 수상을 죽이라는 환청에 시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한 망상과 환청, 그에 따른 극단적인 행동은, 현실과 그의 정신세계가 상당히 괴리되어 있음을 뜻한다. 당시에는 치료법이 나타나기 전이므로 상태가 매우 심각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죄, 처벌과 정신장애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범죄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범죄란, 단지 해로운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악의가 동시에 있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죽일 의도가 없었던) 과실치사는 살인죄에 비해 덜한 처벌을 받게 되고, (자발성이 없었던)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은 무죄가 된다. 또한 처벌의 측면에서 생각을 해보아도, 범인이 현실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보복으로서의 처벌이 의미가 있다. 감옥에 수십년 동안 갇혀 있다한들,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징벌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사진_픽셀

 

결국 정신장애인은 악의와 자발성이 미흡하고 현실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전제 하에, 무죄가 되거나 처벌이 감경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맥노튼 룰이 모든 정신장애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미연방법원에서는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는 형량을 감경하되, 반복적 범죄행위 또는 반사회적 행위로만 나타나는 장애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가령, 반사회적 인격장애, 방화벽, 도벽, 도박중독 등은 정신장애에 속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처벌 받는다. 이들에 의한 폭력, 방화, 도둑질이나 도박은 공공의 이익에 반하고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며, 이들의 현실 판단력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이 부여된다.

 

다음으로는 악의, 자발성이 인정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충동조절이 안되어 아파트 외벽 공사 중이던 인부의 생명줄을 끊은 범인이 오랜 기간 치료를 중단한 조울병 환자라면, 악의와 자발성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정신장애를 앓았거나, 앓고 있었다고 해서 모두 처벌이 감경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행위를 할 당시의 범인의 상태가 어땠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판단하기 위해 범인의 정신과적 치료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뇌 영상검사나 뇌파 검사 등을 사용한다. 때로는 범죄심리학자와의 면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자문을 필요로 한다.

 

기고를 마치면서 '"정신장애인=예비범죄자"라는 인식이 커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든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보다 훨씬 낮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정신장애인의 범죄가 국민적 관심이 되고 관련 보도가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많아 보이는 것일 뿐이다. 보호받아야 할 정신장애인들이 예비범죄자의 처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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