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을 뜻하며,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정신의학에서는 전쟁, 재난, 강간, 폭행 등 생명에 위협을 줄 만큼 심각한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하였으나 최근에는 점차 그 범위가 넓어져서 각 개인의 삶에서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적인 경험,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반복적으로 놀림 받은 경험, 너무 급한 나머지 학교에서 변을 지린 경험, 발표 때 실수하여 부끄러움을 느낀 경험 등도 포함한다.

프로이드의 치료 사례를 보면, 엠마라는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엠마는 상점, 특히 옷 가게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열두 살 경 어떤 상점에서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점원들이 웃자 그녀는 까닭도 없이 도망을 쳤다. 상점을 들어가려고 하면 그 때의 장면이 떠 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왜 도망갔는지는 도무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와 별도로 프로이드는 엠마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사건 하나를 찾아냈는데, 여덟 살 때 어떤 상점에 들어갔다가 상점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사건이다. 상점 주인이 웃으면서 옷 위로 그녀의 성기를 만졌던 것이다.

기억 체계가 완성된 이후의 트라우마는 대게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기억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해마의 구조가 재구성되기 전의 일이나, 그 사건에 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전의 사건은 잠재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잠재된 기억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히 기억된다. 이런 잠재된 기억은 유사한 사건이 주어지면 뒤늦게 환기되는 것이다. 엠마의 열두 살 때의 사건은 여덟 살 때의 사건과 외형상 많은 유사점을 지닌다. 훗날 상점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도 잠재된 기억이 반복적으로 환기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최근 발표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단지 기억 체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취약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Badanes 교수팀은 신생아 시절 통증 등의 고통스런 경험을 반복한 아기는 자라서 스트레스 반응과 불안 반응에 대한 대처가 미숙하다고 하였다. 또한, McGowan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어린 시절의 반복되는 학대는 해마에서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의 발현을 영구적으로 감소시킨다고 하였다. 이는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HPA axis의 반응을 어지럽히고 여러 정신의학적 질병의 발병율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린 시절의 적절한 보호와 정서적인 지지, 빠른 대처와 적절한 치료는 필수적이다. 이에 관한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사회적으로 정신과적 질병에 대한 치료, 손해 비용을 감소 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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