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기복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 살의 여자입니다. 요즘 제 상태에 대한 선생님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전 요즘 감정 기복이 극과 극을 달립니다. 어떤 날은 너무 들떠서 신나는 노래에 맞춰 들썩들썩 리듬을 타며 일을 하고, 집중도 잘 돼서 능률이 좋아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사소한 문제에 예민해지고 일을 해도 자꾸 실수를 합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가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어서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식욕도 조절이 안 되어 폭식을 하기 일쑤인데, 그러고 나면 ‘난 왜 이것밖에 안될까’ 라는 생각에 더 우울해집니다.

 

사진_픽사베이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20대 후반에 들어서며 이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봄, 가을이 되면 계절이 바뀌는걸 기분으로 알아챌 정도로 이유 없이 우울감이 들곤 했어요. 보통 2주 정도 쭉 우울한 상태로 있다가 자연스레 나아졌는데, 요즘 들어선 거의 하루, 이틀 간격으로 기분이 변해요.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생활과 운동을 해봐도 잠깐 괜찮아질 뿐, 한 달째 이런 기분 변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서른이 되면서 아무것도 이룬게 없는 것 같아 초조한 기분인데 극과 극의 감정기복까지 겪게 되니까 마음이 너무 힘드네요. 친구로부터 계절성 우울증 같은 것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이런 경우가 맞는 건지,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레 괜찮아질지, 혹은 이런 기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궁금해요. 저 왜 이러는 걸까요?

 

정신의학신문의 답장:

실제로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꽤 많이 듣게 되는 게 바로 ‘감정 기복이 심한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되고 기복이 심한 모습은 여러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요, 가장 먼저 우리가 흔히 ‘조울증’ 이라고 부르는 양극성 장애를 들 수 있습니다. 양극성 장애는 자신감이 과도하게 넘치고 말수가 늘어나며 끊임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조증 삽화와 기분이 가라앉으며 식욕이 줄어들고 무기력감, 무가치감 등을 느끼게 되는 우울 삽화가 반복되는 질환입니다. 또한 기분이 들뜨지만 조증에 비해 행동 문제가 적은 경조증도 있고, 우울 증상과 조증 증상이 뒤섞여 한번에 나타나는 혼합형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정 기복을 보이는 또다른 질환으로 비정형 우울증을 들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일반적인 우울증과 달리 비정형 우울증에서는 주변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해 심한 기분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일반적인 우울증에선 대개 식욕이 줄어들고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되는데 반해, 비정형 우울증에서는 식욕이 늘어나 폭식을 하게 되고 종일 잠을 잘 정도로 과수면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외에 월경 전 증후군이나, 연극성 인격, 경계성 인격과 같은 B군 성격을 가지신 분들에게서도 감정기복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연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나기복 님의 상태는 비정형 우울증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하신 계절성 우울증은 최근 2년간 특정계절에만 나타났다가 소실되는 우울증상이 있을 때 진단을 하기 때문에 병력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면담이 필요하지만, 봄과 가을에만 우울감이 나타난 점, 계절성 우울증에서 비정형 우울증의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또 정보가 충분하지 않지만 우울증과 경조증이 함께 나타나는 혼합형 양상의 양극성 장애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겠네요.

 

사진_픽사베이

이런 감정기복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질문해 주셨는데요, 우선 비정형 우울증은 전형적인 우울증과 비교했을 때 뇌 속 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약물 치료로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비정형 우울증의 특성이 양극성 장애의 소인과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해서 일반적인 항우울제 대신에 기분조절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약물 치료로 기분이 안정화 되고 난 후엔 우울감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기분이 변하는 것처럼 보여도 대개는 우울한 기분을 유발하는 특정한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미리 알아두면 대처하기 쉽겠지요. 또 상황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생각의 오류를 찾아내 교정함으로써 한결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과 생각들은 혼자의 힘으로 찾아내기 어려우므로 면담 치료를 통해 치료자의 가이드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추측이지만, 사연에 언급하신 것처럼 서른 이라는 나이가 주는 초조함이 기분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시대에 젊은 나이에 눈에 띄는 성취를 거둔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스스로를 ‘서른이 되었으니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압박하고 계신 것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다방면에서 성공을 거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계실 수도 있겠죠. 특히 요즘엔 SNS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 잘난 모습만을 접하다 보니 ‘나만 뒤쳐진다’ 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져 우울해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현재의 모습을 이상적인 자기상이나 타인과 비교하며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기의 길을 가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올라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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