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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이야기]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7.10 07:17

 

사진_픽사베이

월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요셉의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만족감과 함께 영등포 거리의 활기를 느끼며 걷는 즐거움이 있는 시간이죠. 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내의 전화. 매번 그렇듯 아이들 챙기느라 힘겨우니 빨리 들어와 달란 용건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5개월밖에 안된 막내 셋째가 이상하다고 합니다. 소아과 중환자실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간호사인 아내가 많이 놀란 걸 보니 불안한 생각이 엄습합니다. 큰애 화상사고 때에도, 이마를 다쳐 피를 흘릴 때에도 이리 흥분하지 않았는데 이상합니다.

 

크게 다쳤나? 열성경련을 했나? 뒤집기 하다 혹시 사고라도 났나? 불안한 생각들을 숨기고 진정하라며 아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셋째의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축 처진다는 얘기를 합니다. 놀다가 팔이 빠졌다는 소린가, 중풍 같은 상황이 왔다는 건가, 상상 속에서 현장의 이미지를 조합하고 있는데 이번엔 팔을 계속 떤다고 이상하다고 하네요.

 

사진_픽사베이

에이, 혼자 놀다가 어디 눌렸던지 팔꿈치가 살짝 빠졌던지 했겠지 생각하며 영상통화를 통해 아이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아이 엄마 말대로 아이의 한쪽 손과 팔이 움찔움찔하며 규칙적으로 떨고 있네요. 네, 그렇습니다. 경련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의식은 멀쩡하더군요.

 

아무래도 부분 발작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일단 응급은 아니라는 말로 아내를 안심시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빨리했습니다. 헌데 영상통화를 종료한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팔과 다리에 이어 얼굴까지 떨고 있다며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보라면 뭐 별 수 있나요. 아직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도 더 남은 거리. 아이들 셋을 혼자 보던 아내의 상황을 고려하면 119 대원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119 구급차량을 통해 대학병원 소아전문 응급실로 가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여 뒤, 집에 도착했습니다. 장난감이 흩어져있고 먹다 남은 간식이 널려 있습니다.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흔치 않은 상황에 엄마가 얼마나 놀랐을지, 얼마나 정신없이 애들을 챙겼을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안쓰러운 맘을 안고 부지런히 기저귀와 분유를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수액을 잡느라 침상에 눕혀 있었습니다. 5개월짜리 아기 수액 잡는 일이 참 만만찮은 일이죠. 어찌어찌 겨우 채혈은 되었는데 수액은 좀처럼 들어가지 않습니다. 울다 지친 아이를 달랠 겸 일단 수액은 미루고 검사 결과만 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 경련은 저절로 멈췄다고 하네요. 첫째와 둘째는 잠옷 차림으로 응급실 침상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보통 소아 경련은 열성경련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열성경련의 경우 의료진은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소아 때는 경련에 대한 역치가 낮아 고열에 의해 잠시 경련하는 것일 뿐, 성인이 되었을 때 간질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죠. 하지만 열성경련이 아닌 경우, 게다가 부분 발작인 경우는 얘기가 다릅니다. 꼭 뇌파검사와 MRI 검사를 통해 뇌의 구조적 병변 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수액을 잡느라 울다 지친 셋째는 잠이 들었네요. 심심해하는 큰애들의 장난을 받아주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두 시간여 뒤, 혈액검사에 이상이 없지만 추가 검사는 필요하겠다는 소아과 당직 선생님 소견을 들었습니다. 일단 집에 갔다가 다음날 외래에서 나머지 검사를 잡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말이 없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많이 놀랐을 거고 많이 원망스러울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 옆에 없었던 게 못내 맘에 걸립니다. “별거 없을 거야” 하고 달래 보지만 답이 없네요. 미안한 마음뿐이죠, 뭐 제가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새 잠에서 깨어 아빠 얼굴을 확인한 막내가 방긋방긋 웃습니다. 엄마 아빠 사이의 쌀쌀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신이 났습니다. 아이의 웃음 덕에 아내도 서서히 다시 웃음을 찾습니다. 맘이 풀린 아내가 놀랐던 그때 상황을 얘기하며 눈물짓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 부부는 육아 에피소드를 하나 더 쌓았습니다.

 

 

최석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csj38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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