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앞선 생각에 관한 것들은 사실 지금부터 설명하는 ‘감정’을 제대로 알기 위한 것이다. 이제부터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려 한다. ‘감정’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다.

 

사진 픽사베이

 

필자(나)는 어릴 때 꽤 좋은 동네에 살았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도 나름대로 잘 산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느끼며 지낼 수 있었던 이면에는 내가 몰랐던 가족들의 무한한 배려와 노력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여러 어려움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고, 형은 어린 내가 비뚤어지지 못하게 보살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린 내가 몰랐던 숨겨진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한 시기가 그즈음이다. 친구들과 학원을 빼먹고 딴짓 하기를 즐기던 내가 이런 숨은 모습을 알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의 학원비 몇 만원을 위해 일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 어린 동생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했던 형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미안한 마음’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는 그 전에도 수없이 들었다. 그런 말을 다 알아듣고 이해를 하면서도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었다. 나는 알면서도 내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런 말과 생각들은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공부를 시작 한 것은 내 마음 속에 ‘고마움과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원동력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자기애성 인격장애 진단 기준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치심’이라는 감정으로 모든 항목을 설명할 수 있다.

 

자기애성 성격은 끝없이 높은 자존심과 그 이면에 숨겨진 한없이 낮은 자존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해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애성 성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항상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는 행동과 함께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 이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수치심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함께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사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자신 그 자체로는 사랑 받을 수 없는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항상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끄럽고 부족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기 위해 거만이라는 가면을 쓰고 경멸이라는 행동을 통해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치심을 피하기 위한 위와 같은 행동은 이러한 생각을 더 강화한다. 이들은 점점 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나아야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야지만, 가치가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애성 성격을 가진 사람은 무의식 속에 숨겨진 이러한 자신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주위에 자기애성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수치심이라는 감정(and 다른 사람이 지켜볼 때와 지켜보지 않을 때의 상황)에서 바라본다면 그 사람의 행동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합리적으로 이것저것 따져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한 후에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

데이비드 흄 – 영국의 가장 위대한 경험주의 철학자

 

이성을 중시했던 인간 본성에 관한 기존의 생각과 달리 데이비드 흄은 사람이 행동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동기는 정념에서 나온다고 했다. 오늘날의 뇌과학은 데이비드 흄의 이러한 생각이 옳았음을 밝혀냈다.

 

뇌에서 감정 관리를 하는 부분-안와전두피질 orbitofrontal cortex , 이 부위는 본능적인 감정을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한다-이 손상된 사람은 결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이성적인 영역을 관리하는 뇌 부위는 멀쩡했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이것저것 따질 수는 있었지만 막상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데 방해가 되는 감정적인 부분이 없어졌으니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계속해서 좋은 이유와 좋지 않은 이유를 갖다 대기만 하고 선택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무엇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감정이다.

 

옳다는 생각은 하지만, 옳다는 느낌은 따라오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마치 사운드 없이 공포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우리는 잔인한 장면을 보더라도 사운드 없이는 무서움에 떨지 않는다. 결국 공포 영화의 성공 여부는 사운드가 결정하듯 마지막 순간에 선택과 결정이라는 옷을 입히는 작업은 ‘감정’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장에서 감정의 중요함을 알아봤다. 감정은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다.

 

끝으로 아래의 ‘행동 찾기’를 통해 나는 주로 어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지 알아보자.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아래의 과정도 무수히 많은 반복을 통해 스스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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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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