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수 하림 씨의 노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옵니다.
“다 지난 일인데/ 누가 누굴 아프게 했건/...어느덧 내 손을 잡아준/ 좋은 사람 생기더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 이대로 우리는 좋아보여”"
이 노래는 지나간 사랑을 새로운 사랑으로 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노래합니다. 이렇게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우리는 잊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과거를 잊고 싶어도 쉽게 잊지 못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어떤 이들은 힘든 기억을 빠르게 정리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가지만, 또 어떤 이들은 과거의 경험을 곱씹으며 오랫동안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향은 단순한 기질의 차이만 아니라 심리적·신경학적 요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 높은 감정 민감성
이러한 사람들은 감정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 특정 사건에서 받은 충격이나 감정을 강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감정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은 뇌의 편도체(amygdala)와 해마(hippocampus)에 깊이 각인되며,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2. 반추적 사고(Rumination)
반추적 사고는 특정 사건이나 감정을 반복적으로 곱씹는 사고 패턴을 의미합니다. 이는 문제 해결보다는 감정을 증폭시키고 우울감이나 불안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3. 높은 완벽주의 성향
완벽주의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나 후회를 계속해서 되새기며, ‘다르게 행동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와 자책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4. 애착 유형과의 연관성
어린 시절 부모나 중요한 타인과의 애착 경험이 불안정했던 경우, 특히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를 쉽게 놓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 현재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여러 가지 정신적·신체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추적 사고와 함께 지속적인 자기비판은 우울증과 불안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심각한 트라우마 경험이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경우, PTSD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대인관계에서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과거의 상처로 인해 새로운 관계 형성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점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신체적으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지속적으로 분비되어 면역력 저하, 고혈압, 수면 장애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경향이 심하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심리적 전략과 행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고 패턴을 바꾸기
① 인지 재구성(Cognitive Reframing): 과거의 경험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때 나는 최선을 다했다.’ 또는 ‘그 사건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바꾸어 보면 감정적으로 덜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② 반추적 사고 줄이기: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면, 특정한 신호를 설정해 스스로를 제어하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을 튕긴다.’라는 식으로 의식적으로 사고를 차단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 감정을 적절히 해소하기
① 감정 일기 쓰기: 글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 정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② 명상과 이완 훈련: 명상, 요가, 심호흡 훈련 등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3. 행동적 접근
① 새로운 경험 시도: 새로운 활동을 하면서 긍정적인 기억을 만들면,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일 수 있습니다.
② 사회적 지원 활용: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는 것은 감정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만약 내 주변에 이렇게 오래된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오래된 기억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때때로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1. 공감과 이해
“그만 좀 생각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 일이 정말 힘들었겠구나”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해결책보다 지지 제공하기
상대가 조언을 원하지 않는다면,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들어주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3. 함께 긍정적인 활동하기
취미활동, 운동, 여행 등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과거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오래된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하는 성향은 다양한 심리적·신경학적 요인과 깊이 연관된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정서적 고통을 느끼거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인지 재구성, 감정 조절, 행동적 접근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가 이러한 과정에서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소개해 드린 방법들을 통해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황인환 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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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자신의 글을 통해 작은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선생님의 노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