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김예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꾸 생각나고, 점점 더 하게 되고, 안 하면 불편해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으신가요? 마음과는 달리 단칼에 끊어내지도, 생각만큼 조절하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무력감을 느끼고 계신가요? 오늘은 지난 한 해를 떠올릴 때 ‘ㅇㅇ에 중독된 것 같아’라는 생각이 스치는 분들께 이 편지를 보냅니다. 요즘은 무엇이든 ‘중독’이라는 말이 쉽게 따라붙습니다. 술, 스마트폰, 유튜브, 쇼핑, 게임 등에 빠져 있는 상태를 대중매체에서는 ‘도파민 중독’이라 부르고, 그것을 끊어 보려는 시도를 ‘도파민 디톡스’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진료실에서도 “도파민에 중독된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다면 도파민은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토록 경계하고 있는 걸까요? 이 편지와 소개해 드릴 책을 통해, 자극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중독과 마주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들 역시 한때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중독되기 전부터 악행을 일삼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중독이 이들의 삶을 망가뜨린 것이다.
중독은 그들의 선택이라기보다 그들을 '낚아챈' 무언가이다.
중독에 '낚여서',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중독에서 벗어나겠다고 노력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은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중독에 탐닉한다.”
정신의학의 진단 체계인 DSM-5에는 ‘중독’이라는 이름의 공식 진단명이 없습니다. 대신 조절하려고 해도 잘 안 되고, 그 때문에 일, 관계, 건강 같은 삶의 여러 영역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계속 반복되는 사용이나 행동을 ‘사용장애’라는 이름 아래에서 진단하고 설명하지요. 단순히 사용하는 양이나 시간이 많다고 해서 곧바로 의존 상태가 되었다고 보지는 않으며, 그 사용 방식과 행동이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도파민의 배신>의 저자인 강웅구, 박선영, 안유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완전한 중단만이 치료의 목표'라는 입장에서 벗어나서, 중독 치료의 최종 목표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려고 하는 중독 치료 전문가들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대중에게 ‘쾌락과 즐거움’의 신경전달물질로 알려진 도파민의 정의를 바로잡고, 도파민을 사회적 맥락과 뇌과학의 언어로 설명합니다. 또 도파민을 ‘중독’에만 한정하지 않고 정신의학 전체의 다양한 장면 속에서 다루어, 이 물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도파민이 곧 ‘쾌락 물질’이라는 통념이 잘못되었다면, 이 별명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쥐를 이용한 초기 뇌 연구에서 쾌감을 일으키는 뇌 회로가 주로 도파민이 관여하는 보상 회로와 연결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이 부위가 ‘쾌락 중추’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후 대중에게 복잡한 뇌 과학을 쉽게 전하기 위해, 여러 책과 교양 채널에서 이 내용을 ‘도파민 = 쾌락 물질’이라는 한 줄 설명으로 소개했고, 이런 요약이 널리 퍼져 나갔지요. 하지만 1990년대 이후 Schultz, Berridge 등을 포함한 여러 연구자들의 결과가 축적되면서, 도파민은 쾌락과 행복감을 직접 만들어 내기보다는 보상을 예측하고, 동기와 학습을 돕고,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현저성, salience)와 관련된 물질이라는 결과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지요. 학계는 이미 도파민을 ‘행복의 신경전달물질’로 보는 공식에서 상당 부분 벗어났지만, 초기의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대중 속에서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일부 사실과 오해, 비유가 뒤섞인 이야기들이 기억에 잘 남는 문구로 소비되면서, ‘도파민 중독/디톡스’ 같은 표현이 범람하고 있는 현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표현들이 위험한 이유는, 특정 자극에 도파민 시스템의 반응이 편향되어 자기조절 기능이 약해진 상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도파민 자체를 불필요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 죄책감과 자기혐오를 키우기 쉬운 면이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중독의 특징은 ‘재미가 없어도, 안 하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서 하게 되는 상태’에 가깝지만, ‘쾌락의 과잉’이나 ‘행복 프레임’의 오해 안에서는 중독 환자분들을 ‘즐거움을 분별 없이 좇다가 망가진 사람’처럼 쉽게 낙인찍게 만들기도 하지요.
‘도파민 디톡스’라는 말에는 또 다른 오해의 여지도 들어 있습니다. 며칠 참고 금욕 생활을 하면 뇌가 한 번에 리셋될 수 있다는 환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훨씬 더 길고 지난한 과정입니다. 자극 노출을 조금씩 조절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금단과 불안, 우울 같은 감정을 견디고 돌보는 법을 배우며, 건강한 활동과 새로운 보상 체계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함께 가야 하지요. 며칠 자극에서 떨어져 지낸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간단한 일만은 아닙니다.
“중독된 마음은 항상 변이를 되돌리려는 의학적 조치에 저항한다.
[...] 중요한 메시지는 '치료받아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 환자가 지켜야 할 계약의 내용은 약물을 하거나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치료받으러 병원에 꾸준히 다니고 의료진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다.
의사가 약속할 것은 약물을 끊게 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환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작용의 과정에서 환자는 중독자임을 밝혀도
안전하다는 체험을 하게 되고,
자신의 문제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의학적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도파민이라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쾌락’보다는 주의, 기대, 동기, 학습, 현저성 같은 단어가 더 잘 어울립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예상한 보상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알려 주어, ‘이 행동을 다음에 또 할지 말지’를 학습하게 하는 신호인데 이를 보상 예측오차(reward prediction error)라고 부릅니다. 또 실제로 할 때 느끼는 ‘좋음(liking)’보다는, 어떤 대상이 자꾸 눈에 밟히고 다시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원함(wanting)’과 더 관련이 있어 인센티브 살리언스(incentive salience)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지요. 수많은 자극 중 무엇이 중요한지에 형광펜을 치듯 주의를 몰아주게 하는 동기적 현저성(motivational salience)도 도파민의 역할입니다. 즉 도파민은 행복감을 직접 만들어 내기보다, ‘어디에 주목하고 무엇을 다시 하고 싶어지는지’를 정해 주는 뇌의 신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도파민만이 아니라, 우리가 놓여 있는 환경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강하고 빠르고 예측하기 어려운 자극이 잘 팔리도록 설계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가공식품, SNS 알고리즘, 쇼핑을 부추기는 마케팅은 모두 도파민 보상계를 강하게 자극해 이윤을 얻는 구조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누군가를 단지 ‘의지가 약해서 중독됐다’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상보다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대한 경험이 반복되어 뇌에 새겨지면, 도파민 신호는 특정 자극에 몰리고 그 행동은 습관이나 중독으로 굳어지며, 일상의 자극에는 점점 반응이 무뎌집니다. 책은 이 단계를 “자유 의지보다는 내적으로 강요된 심리 상태”에서 “주어진 자극을 수동적으로 소비할 뿐인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 복권, 경마, 카지노 등은 모두 합법적인 기업들이 운영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대마도 합법적인 산업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템들의 접근성을 제한하려는 사회적 조치는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을 일으킨다.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는
경제 주체의 이윤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기에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
[...] 중독 문제는 의학적 범위를 넘어
사회문화적 환경, 경제체제, 정치체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 중독 문제를 사회 전체와 격리시켜 해결책을 찾으려는 기대는 타당하지 않으며,
사회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 살펴본 것처럼 의존과 중독은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범람하는 자극들 속에서 중독을 낙인이 아니라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삶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도움을 요청하고 서로를 건져 올릴 기회가 생깁니다. 매섭게 우리를 “낚아챈” 그 무언가는 처음의 목적과 기능은 사라졌는데도 한때의 즐거움만 앞세워 우리를 붙잡곤 하지요. 그래서 무언가에 ‘배신’당한 마음으로 홀로 중독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책에서 저자들이 말하듯 “진짜 기꺼운 중독자나 자율적 중독은 없다”라는 점을 함께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중독은 혼자만의 의지의 싸움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빠져나와야 하는 싸움입니다. 이 편지와 책이 그 길 위에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 떠올릴 수 있는 ‘내 편’이 되어 주기를, 그리고 지독한 중독의 굴레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김예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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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해드리는 [Sincerely yours,] 시리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과 추천이 반영된 책을 읽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며 필요성을 느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편지나 이메일의 끝인사로 사용되는 'Sincerely yours,'는
'진심을 담아' 또는 '당신의 진실한 -로부터'라는 뜻으로
매우 정중하지만 서로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나누는 상담이 가진 기억 지속 시간의 한계를 넘어,
평소에도 소지할 수 있는 문자화된 책을 통해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분들이 원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직접 책을 읽고, 책을 처방해봅니다.
궁금했던 책이나 고민이 있으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향후에 알맞은 책을 찾아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시고 다음 편지에서 또 뵐게요.
한양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졸업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치료 전문과정 이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5 세종도서 선정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