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죽을 뻔 했네
갑작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매 해 그래왔다. 깊은 우울이 나를 덮쳐 정말 ‘죽겠다’ 싶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라고는 가만 누워 조용히 울다 잠들고 일어나 부은 눈으로 다시 우는 것 뿐이었다. 보통 이 시기에 반복적으로 우울하다면, 계절성 우울증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게 뭐든 이미 경험을 했든 아니든, 고통스럽긴 매한가지다. 나 또한 수 년을 반복하며 계절성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그것이 다가오는 시기가 되면 힘들기만 할 뿐 이 것이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매 해 이 시기쯤 힘들어 해왔는데, 잘 지내?”
라고 연락이 오고 나서야 ‘아, 내가 계절성 우울증을 앓고 있구나’ 하고 우울의 한복판에서 깨닫게 되었다. 그 연락이 위로가 되었지만, 나를 우울의 늪에서 끄집어내지는 못했다. 그 것은 ‘오로지 내가 깨고 나가야 하는 일’ 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일’은 너무 오래된 습관이고 삶의 잣대까지 얽힌 일이기 때문에 너무 쉽고 오히려 편안하다. 그렇기에 어떤 조건들이 갖춰지면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싫어하고 외면한다.
이번 우울도 정말 ‘죽을 뻔 했네’의 결합체였다. 우리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죽을 뻔 했다’는 무거운 뜻보다 가벼운 뜻으로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너 정말 죽을래’와 비슷한 어떤… 강력한 감정 표현인 셈이다.
이번에도 정말 ‘죽을 뻔 했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렸지만 우울은, 불안은, 공황발작과 자살사고는 틈이 나는 대로 나를 괴롭혔다. 어떤 때에는 불안으로 영하의 날씨에 땀이 흠뻑 나기도 했고, 또 어떤 때에는 공황발작으로 시력이 뿌옇게 변하고 숨이 멎을 것 같기도 했다. 함께 사는 하얀 강아지는 내 감정을 옮겨 받아 함께 축 늘어졌다. 긴 시간의 사투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강렬한 욕구는 오로지 강아지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 뿐이었다. 그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더 길게, 어쩌면 끝없는 출구를 향해 지금껏 걷고 있었을 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약으로 적당히 컨트롤 되는 요즘의 삶에 어느정도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우 예민하고 슬픔을 잘 느끼는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완벽히 다른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마음 깊은 곳에 정해 두었던 것인지, 어느 정도의 낙담을 안고 살아가는 것 말이다.
깊은 우울에 떨어지면, 약이 소용없다고 느낄 만큼 현저히 컨디션이 떨어지는데, 이때 적절한 약 용량 조절이 필요하다. 내 마음에 무기가 조금 더 강해지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컨디션이 떨어지면 말 그대로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외출에 필요한 적당한 준비와 위생관념 등이 전부 ‘힘든 일’ 이 된다. 약은 더 필요하고, 나갈 수는 없는 불량한 순환이 생겨난다.
12월을 마감하며, 마침 한 해도 마감 해야 하는 이 시기에 서서, 올 해는 또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흔들리고 괴롭고 헤쳐내 왔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꽤나 자주 ‘죽을 뻔’ 했고 그것으로 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 나왔다. 사랑이 가득했는데 동시에 절절하게 외로웠고 어느 때는 사랑이 전혀 없어서 마른 땅을 기어가듯 버텨야 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깊게 사랑하도록 태어났다. 그것이 자동으로 순환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사람은 가끔 그런 설계가 통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자신을 학대수준으로 몰아붙이고, 갈등 상황에서 내가 내 편을 들지 않는 일 들이 생겨난다. 한 해 동안 나를 얼마나 미워했고, 기를 쓰며 얼마나 겨우 지켜냈는지를 생각한다. 하루가 지나고 새 일 년이 시작되고, 그 잠깐의 변화에 내가 변해봐야 얼마나 변할 수 있겠는가. 하루 씩의 변화는 별 볼일 없었다. 그러나 삼 개월은 달랐고, 육 개월은 눈에 띄었다. 계절마다 나는 다르게 살았고, 일 년을 뒤 돌아보니 한 뼘정도는 평범해진 것도 같다. 올 해도, ‘죽을 뻔 했네’ 하며 깊은 한 숨을, 안도를, 낙담을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