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올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길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는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빨리 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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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에는 크리스마스도 있고, 연말모임이나 행사들도 많다 보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뜨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고생한 자신에게 왠지 작은 선물이라도 해 줘야 할 것 같고, 여행을 가거나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연말 여행이나 모임 계획을 이미 세워놓으신 분들이 계시지요. 또, 다가오는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미리 부지런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연말은 우리에게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연말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라고도 하는데요. 미국심리학회(APA)에서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를 홀리데이 블루스라는 정식 용어로 규정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홀리데이 블루스를 느끼는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우선 겨울철 줄어드는 일조량과 그에 따른 야외 활동 감소, 몸의 생체리듬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햇빛을 적게 보고 활동량이 적어지면 세로토닌 분비도 함께 줄어들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죠. 이렇듯 특정 계절에 느끼는 정서적 변화와 우울감을 ‘계절성 정동장애(SAD)’라고 합니다. 여름철이나 봄철에도 발생할 수 있지만 계절성 정동장애는 특히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연말이 되면서 한 해 동안 나의 성과나 성취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우울감도 한 몫 합니다. 많은 회사에서는 연말에 한 해의 인사 평가, 승진, 조직개편안 발표 등이 이뤄집니다. 그러면서 기대한 것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실망감과 걱정, 불안이 마음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내가 조직에서 도태되거나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몰려듭니다. 자영업이나 개인사업을 하시는 분들, 프리랜서처럼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시는 분들은 경기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 불안정성으로 힘들어하시기도 합니다. 또, 좋은 성과를 내고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노력한 만큼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한 해를 허송세월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죠.

 혼자 사시거나 다른 분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분들이라면 남들이 연말모임을 하거나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남들은 다 행복하고 즐겁게 연말을 보내는데, 나만 이렇게 혼자 외롭게 지내는구나.’ 싶은 마음이 유난히 더 크게 드는 것이죠.

 이렇게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연말에 더 우울감을 크게 느낄 수도 있는데요. 이런 홀리데이 블루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운동과 야외 활동을 통한 에너지 회복이 중요합니다. 날씨도 추워지고 해가 빨리 지면서 겨울철에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데요. 귀찮고 힘들더라도 낮에 적당히 햇빛을 보고, 야외 활동을 하며 운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근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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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동안 내가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허무하거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신다면, 크든 작든 자신이 이룬 일들을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꼭 일에서의 성과가 아니더라도 한 해 동안 읽은 책이나 봤던 영화 목록을 정리해 봐도 좋고, 새롭게 시작한 취미 중 꾸준히 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올해 이룬 일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꼭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도 한 해 동안 내적으로 이룬 성장이나 생각, 관점의 변화가 있었다면 기록으로 남겨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성과를 꼭 물질적이거나 가시적인 것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이 꼭 인정해 주는 것이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나에게 의미 있었던 일이라면 그것 역시 나의 성취, 성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연말이라고 꼭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가 SNS에 행복한 모습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그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또, 많은 모임이나 행사가 반드시 좋은 시간이었으리라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 많은 행사나 모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의미 있고 힘이 되는 사람과의 만남, 혹은 활력을 줄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삶의 주기와 형태에 따라 사람들과의 관계가 바뀔 수 있음을 기억하며, 지금의 외로움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또 반드시 영원하지도 않으리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의 나 자신과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화려하고 반짝이는 불빛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면서 왠지 이 시기를 평소보다는 더 특별하고 빛나게 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흥겹고 즐거운 연말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행복해하는 것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소박하고 평범한 연말,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말, 빛나지 않는 내 모습이라도 괜찮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곳에서 가장 충만하고 따뜻한 연말을 보내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
대한민국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 이사, 사무총장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자문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감사자문위원회 위원
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심의위원회 위원
생명존중정책민관협의회 위원, 산림청 산림치유포럼 이사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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