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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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강즉절(太剛則折), 지나치게 세거나 뻣뻣하면 꺾이기 쉽다는 의미의 한자성어인데요, 자신만의 신념이나 권력, 기조 등이 너무 강하거나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오히려 부러지기 쉬운 경우를 빗대어 쓰이는 말입니다. 또한 흔히 ‘고집불통(固執不通)’이라는 고사성어도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만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죠.

오늘은 이러한 ‘고집불통’과는 반대되는 ‘융통성’ 혹은 ‘유연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먼저, 융통성이란 ‘변화하는 그때그때의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재주’를 일컫습니다. 흔히 “그 사람은 너무 원리 원칙만 따지고 융통성이 없다.”, “너는 융통성을 좀 기를 필요가 있다.”와 같이 ‘융통성이 있다.’ 혹은 ‘융통성이 없다.’로,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성질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유연함이란, 융통성과 그 의미가 비슷하지만 ‘부드럽고 연하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죠.

이처럼 융통성과 유연함이라는 두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자기만의 생각이나 입장 혹은 한 가지 원칙이나 관점,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의 관점이나 다양한 방식 등을 수용하거나 고려해서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열린 마음과 태도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는 흔히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성공 법칙과 영광에 젖어 이전의 방식만을 고수하다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인물이나 기업의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어쩌면 한발 앞서서 자신의 관점이나 생각, 행동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못했는데요, 혹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원칙을 고수하거나 기존에 가졌던 신념을 꿋꿋이 지켜 내야 할 때도 있는데요, 사람의 생명 또는 안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때로 자신의 인생을 걸 만큼 개인적으로 중요한 가치나 신념이 있는 경우 등이 해당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융통성이나 유연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를 정체시키고 고립시킴으로써 사회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융통성을 기르는 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생존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융통성을 기르거나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은 우리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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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첫 번째는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새로운 변화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입니다.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변화되었을 때, 이것을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도 자기만의 생각이나 방식에 사로잡혀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돌파구가 없는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애초에 잘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를 꺼려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변화나 도전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융통성의 힘을 발휘하거나 평소 융통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전 상황에서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꽉 막힌 쪽으로 시야를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새로운 길을 탐색하거나, 운이 좋으면 고개를 들어 잠시 파란 하늘을 볼 수도 있으니 말이죠.   

두 번째는 고정된 자아상을 가질수록 융통성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나’에 대한 어느 정도 일관된 자아 정체성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어떠한 가치나 신념을 가진 사람인지, 나만의 개성이나 특성은 무엇인지, 어떤 성격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는 고정된 자아상이 너무 강할수록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융통성의 범위 또한 좁아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를테면, ‘나는 성격이 소심해서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 가는 건 힘들어.’ 혹은 ‘그건 내 가치관이랑 맞지 않아서 못하겠어.’처럼 어느새 자기의 틀 안에 갇혀서 새로운 시도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을 등한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때로는 고정된 자아상을 깨부수고 새로운 탐색과 시도를 통해 자기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일깨워 보세요. 자아상과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융통성을 기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어떤 문제나 관계에서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지금껏 자신이 고수해 온 신념이나 고정관념, 선입견에 대해 살펴보고 수정하거나 바꾸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또한 꼭 어떤 문제나 위기 상황에 닥치지 않았더라도 평소라면 잘 시도해 보지 않았을 다양한 활동과 경험, 독서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 보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훈련을 통해 사고의 유연함을 기르는 것이 가능합니다.

 

한동안 ‘젊은 꼰대’라는 표현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상사를 ‘꼰대’라고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후배에게 권위적으로 구는 20~30대의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은 것인데요, 어쩌면 ‘진짜 꼰대’란 물리적인 나이와는 상관없이 시대나 주변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융통성 없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 아닐까요.

꼿꼿한 나무는 강풍에 쓰러져도, 억새풀은 비록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휘어질지언정 절대 부러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어려운 순간에 유연함을 발휘해서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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