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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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혹은 처음 만난 사람과 뜻밖의 공통된 지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 참 좁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같은 뜻으로 영어권에서는 “What a small world!”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 혹은 낯선 곳에서 지인을 발견하게 될 때면 넓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어디서든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되새기기도 합니다. 

심리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작은 세상 현상(small world phenomenon)’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하버드대에 재직 중이던 1967년 이와 관련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외진 지역에 속하는 캔자스주 위치타와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거주하는 300명의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편지를 보내면서 그 편지가 최종적으로 보스턴에 있는 증권 중개인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이때 편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지인들 간의 연결고리를 활용하여 릴레이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연구진들은 그 전달 과정을 빠짐없이 추적했고, 그 결과 평균 5.5명을 통해 전달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실험은 사회 네트워크에서 모든 사람이 여섯 단계 이내로 연결할 수 있다는 작은 세상 현상을 지지하는 기반이 되었고, 작은 세상 현상과 함께 ‘6단계 분리법칙(Six Degrees of Separations)’이라는 개념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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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상 현상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요성과 효용에 관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으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 구성,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케팅,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서 새로운 친구를 추천하거나 특정 광고를 노출할 때도 이 개념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새로운 사람과 친구가 되었는데 공통된 지인을 발견하면서 관심 분야를 더 많이 공유하고 교류를 넓혀 가는 것이나, 반대로 모르는 사이지만 공통된 지인이 있어 친구 추천이 되고 친구 목록에 추가하면서 네트워크가 넓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작은 세상 현상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발달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네트워크가 작은 세상 현상을 통해서 다 설명될 수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작은 세상 현상에도 비판과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밀그램의 실험은 실제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한 편지가 64통으로 수신률이 낮았다는 점과 처음 편지를 발송하는 사람을 무선표집이 아닌 광고를 통해 모집했다는 점, 최초 발송인 중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특정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그로 인해 표집의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습니다.

또, 작은 세상 현상은 6단계를 통해 네트워크 연결성을 간단하게 설명하지만, 실제로 사회 네트워크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패턴을 가질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다 6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 적거나 많은 단계를 거칠 수도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화적, 지역적 차이, 지리적 특성, 사회 집단에 따른 특성을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점, 정보 전달 과정에서 사회적 연결망의 중요성은 강조하지만 정보 자체의 신뢰도나 정확성, 그것이 정보 전달 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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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한계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작은 세상 현상은 실생활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면서 시스템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고 복잡한 구조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작은 세상 현상이나 6단계 분리법칙이 모든 사회적 상황에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절대 법칙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네트워크 구조와 연결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개념으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빠르게 정보가 확산될 때 그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자세를 가지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온라인 문화의 확산과 함께 우리는 어느 때보다 더 쉽고 빠르게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멀게만 보이던 유명인의 삶을 내 집 안방에 누워서 편안하게 볼 수 있고, 직접 메시지를 보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6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직접적인 연결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편리함의 이면에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의 무분별한 전달, 그로 인한 오해나 헤프닝,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이라는 부작용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세상 참 좁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사이,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공통 지인을 갖고 있었던, 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던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더 조심스럽고 배려있는 모습을 보이며 살지 않았나요? 그때에 비하면 온라인 세상 속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어차피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에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말들을 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행동을 쉽게 하기도 합니다. 이는 아주 먼 것 같으면서도 또 너무 가까운 것 같은, 온라인 세계의 관계가 갖는 특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겠죠. 하지만 생각지 못한 연결고리를 통해 내가 한 행동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넓지만 동시에 참 좁은 우리들의 이 세상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푸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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