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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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변을 보면 게임에 푹 빠져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PC 게임은 물론이고, 모바일 게임까지 섭렵해 잠시도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하는 분들이 있지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게임할 시간을 만들고, 완전히 몰입해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이처럼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 내는 게임. 공부도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게임이 높은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재미, 보상, 경쟁 등의 요소가 복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이러한 요소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기법을 ‘게임화(Gamification)’라고 합니다. 영어 단어 ‘게임(Game)’에 접미사 ‘화(化, fication)’을 합친 용어로,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면 어떠한 활동이든 기꺼이 한다’는 재미 이론을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의 원초적 본능을 활용해 번거롭거나 지루한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게임화는 2000년대 초반 비즈니스 업계에서 활용되기 시작해 교육, 금융, 보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요즘 스포츠 활동을 같이 하거나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을 ‘크루(crew)'라고 하지요. 등산 모임에서도 산에 같이 오르는 친구들을 크루, 등산 코스를 ‘세션(session)’이라고 하는데요. 이 역시 게임에서 유래된 용어입니다.

게임화의 목적은 게임의 매커니즘이나 디자인을 비게임적인 분야에 적용해 게임처럼 몰입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 있습니다. 게임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유발하며, 승부욕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재미는 행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지요. 그런데 게임의 특성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동기부여에 효과적일까요?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의대에서 24주간 94가구(200여명)를 상대로 진행한 연구는 게임화 효과의 지속 기간에 대해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웨어러블 장치를 지급하고 매일 걸음수를 측정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평소 걸음수를 산출한 뒤, 목표 걸음수를 49.5% 정도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후 전체 피실험자를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A그룹은 24주간 평소처럼 걷게 했습니다. 반면 B그룹에게는 12주간 게임화가 적용된 방식으로, 나머지 12주간은 게임 여부를 자율에 맡겼습니다. 다만 앞선 12주 동안은 목표 달성에 따라 점수를 획득하고, 레벨을 높이며, 포인트를 모아 지위를 얻는 등 게임의 재미 유발 요소들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합니다.

그 결과 초반 12주 동안은 B그룹의 걸음수가 월등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20주차 이후부터 B그룹의 걸음수는 A그룹에 비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단순히 게임화 이전과 비교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가파른 감소 추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게임화가 일시적으로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동기부여에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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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또 다른 연구가 있습니다. 브리검영(Brigham Young) 대학의 건강과학과에서 진행한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게임화 방식이 적용된 800개의 건강 관련 앱의 데이터를 수집, 앱 이용자들의 동기 부여 정도를 분석했습니다. 게임의 매커니즘이 반영된 앱이 이용자들의 건강 관련 행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속시키고, 능력을 향상시키는지 확인한 것이죠. 결과는 앞서 소개해 드린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실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게임화가 일시적으로 건강 행동을 지원할 수 있지만, 능력 자체가 향상되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동기 부여와 자기 효능감이 지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게임화는 유익한 습관을 형성 및 유지할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처럼 강한 동기 부여가 필요한 상황에서 유용합니다. 특히 초기 단계에서 시작을 독려하거나 집중력을 높여주는 등 행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게임화 방식으로는 부족합니다. 초기의 흥미 유발 단계에서 더 나아가 학습자에게 맞춰진(coustomazing) 내적 내러티브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어 카드로 게임처럼 글을 배우던 아이가 간판을 읽는 데 성공한 뒤 자신감이 생겨 길가의 모든 간판을 읽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가 단어 카드를 맞출 때마다 제공되는 엄마의 칭찬은 학습 욕구에 즉각적인 효과를 주지만, 자기주도적으로 길가의 모든 간판을 읽는 행위는 자신감이나 자긍심 등 내면의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게임의 힘은 초반의 재미와 흥미 유발에 분명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려면 즉각적인 재미 이면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합니다. 힘들고 지루해서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그 일을 통해 내가 찾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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